충북 청원군 내수읍 비중리 207-1
속칭 선돌거리 부락< 部落 > 과수원< 果樹園 > 옆 동산에 파불< 破佛 >로 유존< 遺存 >했다. 이 불상< 佛像 >은 현재< 現在 > 4부분으로 파손< 破損 >되어 구릉 동쪽의 두면< 두面 >에 두부< 頭部 >가 있었고 북쪽에 신부< 身部 >가 있었으며 하씨가< 下씨家 > 앞마당에 우협시< 右脅侍 > 보살< 菩薩 >이 있었다. 삼국시대< 三國時代 >인 6세기 중엽에 제작< 製作 >된 것으로 한돌에 불상< 佛像 > 광배좌대를 함께 부조기법으로 조각< 彫刻 >한 것이다. 이 지역은 교원대학교 박물관에서 1991년과 1992년 2차에 걸친 발굴조사< 發掘調査 >로 삼국시대로부터 조선시대에 걸쳐서 사지< 寺址 >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삼존불< 三尊佛 >은 원래< 原來 >의 위치< 位置 >를 찾아 복원< 復原 >하려 했으나 본래< 本來 >의 위치< 位置 >를 찾지 못하여 1994년 현 언덕위 건물지에 접착공사< 接着工事 >를 통하여 위치시켰다. 불상< 佛像 >은 고구려< 高句麗 > 불상< 佛像 >과 유사한점이 많고 이 지역< 地域 >의 역사적< 歷史的 >인 자료< 資料 >로서 중요한 가치< 價値 >를 지니고 있다.
속칭 선돌거리 부락< 部落 > 과수원< 果樹園 > 옆 동산에 파불< 破佛 >로 유존< 遺存 >했다. 이 불상< 佛像 >은 현재< 現在 > 4부분으로 파손< 破損 >되어 구릉 동쪽의 두면< 두面 >에 두부< 頭部 >가 있었고 북쪽에 신부< 身部 >가 있었으며 하씨가< 下씨家 > 앞마당에 우협시< 右脅侍 > 보살< 菩薩 >이 있었다. 삼국시대< 三國時代 >인 6세기 중엽에 제작< 製作 >된 것으로 한돌에 불상< 佛像 > 광배좌대를 함께 부조기법으로 조각< 彫刻 >한 것이다. 이 지역은 교원대학교 박물관에서 1991년과 1992년 2차에 걸친 발굴조사< 發掘調査 >로 삼국시대로부터 조선시대에 걸쳐서 사지< 寺址 >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삼존불< 三尊佛 >은 원래< 原來 >의 위치< 位置 >를 찾아 복원< 復原 >하려 했으나 본래< 本來 >의 위치< 位置 >를 찾지 못하여 1994년 현 언덕위 건물지에 접착공사< 接着工事 >를 통하여 위치시켰다. 불상< 佛像 >은 고구려< 高句麗 > 불상< 佛像 >과 유사한점이 많고 이 지역< 地域 >의 역사적< 歷史的 >인 자료< 資料 >로서 중요한 가치< 價値 >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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