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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군태실과태실비 - 왕가(王家)의 태(胎)를 묻던 석실(石室)로 태봉(胎封)이라고도..

by 넥스루비 2007. 8. 7.
충북 청원군 문의면 산덕리 산 411

태실<胎室>은 왕가<王家>의 태<胎>를 묻던 석실<石室>로 태봉<胎封>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왕손의 아기가 태어나면 태실도감<胎室都監>을 임시로 설치하여 안태사<安胎使>로 하여금 명당자리를 찾아 태를 묻도록 하였다. 이곳은 태실이 있으므로 태봉<胎峰>이라는 산이름을 갖고 있으며, 이 안에 묻힌 태함<胎函>은 반구형<半球形>의 개석<蓋石>을 갖춘 원통형<圓筒形>으로 석회암<石灰岩>으로 된, 석함과 개석을 별도로 조성하여 태항아리를 봉안하고 봉분을 조성하였다. 석함은 직경 118㎝, 높이 76㎝로 바깥면을 다듬고 안에는 직경 64㎝, 깊이 58㎝의 내실<內室>을 마련하였으며, 개석은 직경 119㎝, 높이 63㎝의 반구형으로 4귀<耳>를 돌출시켜 4귀와 맞추게 되어 있다. 이 태실의 주인공과 건립시기를 명기한 태실비<胎室碑>는 석회암제로 비신<碑身>과 비수<碑首>는 동일석으로 조성하였는데 비수 상단의 연봉형<連峰形> 장식은 결실되었다. 비문<碑文>은 마모가 심하나 "만력십육년무자<萬歷十六年戊子>"에 세운 아지씨<阿只氏>의 태실이라는 명문이 판독되어 조선 선조<宣祖> 21년(1588)에 태어난 선조의 일곱번째 아들 인성군 공<仁城君 拱>의 태실로 추정된다. 태실과 태실비는 1928년경에 도굴된 후 유실되었던 것을 1994년에 청주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에 의하여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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