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원군 남이면 수대리 산 73-1
이곳은 조선< 朝鮮 > 명종< 明宗 >때 문신< 文臣 >인 필재< 필齋 > 박광우(1495∼1545) 선생이 안장< 安葬 >된 묘소이다. 선생은 중종< 中宗 > 20년(1525) 식년문과< 式年文科 >에 장원급제하여 대소관직< 大小官職 >을 거치면서 『여지승람< 輿地勝覽 >』을 편찬하였고, 명종 즉위년(1545) 사간지제교< 司諫知製敎 >를 역임하였으나 을사사화< 乙巳士禍 >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하였다. 뒤에 율곡< 栗谷 >의 상서< 上書 >로 관직이 회복되고 송천서원< 松泉書院 >에 배향< 配享 >되었다. 묘소 중앙에 봉분< 封墳 >을 중심으로 봉분 바로 앞에 위패비< 位牌碑 >와 상석< 床石 >이 있고, 왼쪽에는 숙종< 肅宗 > 13년(1687) 송시열< 宋時烈 >이 찬< 撰 >한 묘표< 墓表 >가 있다. 이외에도 근래에 조성< 造成 >한 사적비< 事蹟碑 > 장명등< 長明燈 >과 본래의 것인 문관석< 文官石 >·동자석< 童子石 >·망주석< 望柱石 >등이 있다. 조선시대의 전형적< 典型的 >인 묘제< 墓制 >로 그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곳은 조선< 朝鮮 > 명종< 明宗 >때 문신< 文臣 >인 필재< 필齋 > 박광우(1495∼1545) 선생이 안장< 安葬 >된 묘소이다. 선생은 중종< 中宗 > 20년(1525) 식년문과< 式年文科 >에 장원급제하여 대소관직< 大小官職 >을 거치면서 『여지승람< 輿地勝覽 >』을 편찬하였고, 명종 즉위년(1545) 사간지제교< 司諫知製敎 >를 역임하였으나 을사사화< 乙巳士禍 >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하였다. 뒤에 율곡< 栗谷 >의 상서< 上書 >로 관직이 회복되고 송천서원< 松泉書院 >에 배향< 配享 >되었다. 묘소 중앙에 봉분< 封墳 >을 중심으로 봉분 바로 앞에 위패비< 位牌碑 >와 상석< 床石 >이 있고, 왼쪽에는 숙종< 肅宗 > 13년(1687) 송시열< 宋時烈 >이 찬< 撰 >한 묘표< 墓表 >가 있다. 이외에도 근래에 조성< 造成 >한 사적비< 事蹟碑 > 장명등< 長明燈 >과 본래의 것인 문관석< 文官石 >·동자석< 童子石 >·망주석< 望柱石 >등이 있다. 조선시대의 전형적< 典型的 >인 묘제< 墓制 >로 그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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