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원군 북이면 대율리 253-3
최명길(1586∼1647)은 조선< 朝鮮 > 인조< 仁祖 >때의 명신< 名臣 >으로 호< 號 >는 지천< 遲川 > 시호< 諡號 >는 지충< 之忠 >이다. 정묘호란< 丁卯胡亂 >때 주화론< 主和論 >을 주장하여 국란< 國亂 >을 타개하였다. 영의정< 領議政 >을 역임하고 완성부원군< 完城府院君 >에 책봉되었으며 문장< 文章 >과 글씨에 뛰어났다. 묘역< 墓域 >은 약 200평이며 봉분< 封墳 >이 3기인데 중앙에 있는 선생의 봉분은 호석< 護石 >(높이 20cm)을 둘렀고, 상석< 床石 >, 묘표< 墓表 >와 앞열에 망주석< 望柱石 >, 문인석< 文人石 >이 갖추어 있다. 상석은 높이 29cm, 너비 169cm, 두께 97cm이며 묘표는 높이 133cm, 너비 56cm, 두께 15cm로 남구만< 南九萬 >의 글씨로 되어 있고 망주석, 문인석은 화강석< 花崗石 >으로 높이 160cm이며 약간 마모되었다. 그의 신도비< 神道碑 >는 지방유형문화재< 地方有形文化財 > 제59호로 지정되어 있다.
최명길(1586∼1647)은 조선< 朝鮮 > 인조< 仁祖 >때의 명신< 名臣 >으로 호< 號 >는 지천< 遲川 > 시호< 諡號 >는 지충< 之忠 >이다. 정묘호란< 丁卯胡亂 >때 주화론< 主和論 >을 주장하여 국란< 國亂 >을 타개하였다. 영의정< 領議政 >을 역임하고 완성부원군< 完城府院君 >에 책봉되었으며 문장< 文章 >과 글씨에 뛰어났다. 묘역< 墓域 >은 약 200평이며 봉분< 封墳 >이 3기인데 중앙에 있는 선생의 봉분은 호석< 護石 >(높이 20cm)을 둘렀고, 상석< 床石 >, 묘표< 墓表 >와 앞열에 망주석< 望柱石 >, 문인석< 文人石 >이 갖추어 있다. 상석은 높이 29cm, 너비 169cm, 두께 97cm이며 묘표는 높이 133cm, 너비 56cm, 두께 15cm로 남구만< 南九萬 >의 글씨로 되어 있고 망주석, 문인석은 화강석< 花崗石 >으로 높이 160cm이며 약간 마모되었다. 그의 신도비< 神道碑 >는 지방유형문화재< 地方有形文化財 > 제59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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