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원군 북이면 금암리 385-2
이곳은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인 의암< 義菴 > 손병희< 孫秉熙 >(1861∼1922)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선생은 일찍이 동학< 東學 >에 입문< 入門 >하여 1894년 동학혁명< 東學革命 > 때 충청도< 忠淸道 >와 경상도< 慶尙道 >에서 10만의 도중< 徒衆 >을 이끌고 관군< 官軍 >과 싸웠다. 1897년에는 동학(후에 천도교< 天道敎 >)의 3세 교주< 敎主 >가 되었다. 1919년 기독교, 불교 대표들과 함께 3·1운동을 영도하여 독립을 선언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 감옥에서 복역중 병보석으로 출감하여 상춘원< 常春園 >에서 요양 중 병사하였다. 선생이 태어난 생가는 정면 4칸 측면 1칸반의 초가집으로 원형을 보존하고 1961년 탄신 100주년을 맞아 유허비< 遺墟碑 >를 건립하였다.
이곳은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인 의암< 義菴 > 손병희< 孫秉熙 >(1861∼1922)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선생은 일찍이 동학< 東學 >에 입문< 入門 >하여 1894년 동학혁명< 東學革命 > 때 충청도< 忠淸道 >와 경상도< 慶尙道 >에서 10만의 도중< 徒衆 >을 이끌고 관군< 官軍 >과 싸웠다. 1897년에는 동학(후에 천도교< 天道敎 >)의 3세 교주< 敎主 >가 되었다. 1919년 기독교, 불교 대표들과 함께 3·1운동을 영도하여 독립을 선언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 감옥에서 복역중 병보석으로 출감하여 상춘원< 常春園 >에서 요양 중 병사하였다. 선생이 태어난 생가는 정면 4칸 측면 1칸반의 초가집으로 원형을 보존하고 1961년 탄신 100주년을 맞아 유허비< 遺墟碑 >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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