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이곳 백암리< 白岩里 > 방화산< 芳華山 > 기슭은 충무공< 忠武公 > 이순신< 李舜臣 >(1545∼1598) 장군이 무과< 武科 >에 급제< 及第 >하기 전까지 사시던 성장가지< 成長家址 >이다. 충무공이 순국< 殉國 >하신 지 108년이 지난 숙종< 肅宗 > 32년(1706) 이곳에 충무공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사당< 祠堂 >을 세웠으며, 1707년 숙종게서 친히 현충사< 顯忠祠 >라 사액< 賜額 >하였다. 그 뒤 200여 년간 공< 公 >을 추모하는 향불이 끊이지 않았으나 한동안 일제< 日帝 >의 탄압으로 사당은 퇴락< 頹落 >하였다. 이에 동아일보사< 東亞日報社 >가 주관하여 온 겨레의 정성으로 1932년에 사당을 중건하였다. 1945년 해방 후에는 매년 4월 28일에 온 국민의 뜻으로 다시 탄신< 誕辰 > 제전< 祭典 >을 올려 공을 추모하여 왔다. 1966년에는 일생을 충의< 忠義 >에 살고 나라를 구하신 높은 덕< 德 >과 충성< 忠誠 >을 기려 이곳을 성역화< 聖域化 >하고 현충사를 중건하였다. 종합적인 조경< 造景 >공사는 1974년까지 꾀해졌다.
이곳 백암리< 白岩里 > 방화산< 芳華山 > 기슭은 충무공< 忠武公 > 이순신< 李舜臣 >(1545∼1598) 장군이 무과< 武科 >에 급제< 及第 >하기 전까지 사시던 성장가지< 成長家址 >이다. 충무공이 순국< 殉國 >하신 지 108년이 지난 숙종< 肅宗 > 32년(1706) 이곳에 충무공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사당< 祠堂 >을 세웠으며, 1707년 숙종게서 친히 현충사< 顯忠祠 >라 사액< 賜額 >하였다. 그 뒤 200여 년간 공< 公 >을 추모하는 향불이 끊이지 않았으나 한동안 일제< 日帝 >의 탄압으로 사당은 퇴락< 頹落 >하였다. 이에 동아일보사< 東亞日報社 >가 주관하여 온 겨레의 정성으로 1932년에 사당을 중건하였다. 1945년 해방 후에는 매년 4월 28일에 온 국민의 뜻으로 다시 탄신< 誕辰 > 제전< 祭典 >을 올려 공을 추모하여 왔다. 1966년에는 일생을 충의< 忠義 >에 살고 나라를 구하신 높은 덕< 德 >과 충성< 忠誠 >을 기려 이곳을 성역화< 聖域化 >하고 현충사를 중건하였다. 종합적인 조경< 造景 >공사는 1974년까지 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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