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시 배방면 신흥리 산19
천안과 온양간의 국도 남쪽 표고 250m의 성재산에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길이 약 1,500m이며 석축으로 이루어진 석성이다. 대부분 무너져 돌무지만 보이나 성의 남쪽에 남아 있는 길이 15m정도의 석축에서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 사용한 석재는 두께 약 12m 길이 50㎝ 정도의 자연할석을 앞면만 다듬어 성벽을 쌓았다. 적심의 단면을 보면 토사를 섞지 않은 석재.잡석을 이용하여 너비 3∼4m에 약 40단(현재 남은 부분)을 모두 길이모쌓기로 하였다. 성벽은 하단보다 상단을 약간 내경<內傾>하도록 하였는데 복원 높이는 5∼6m정도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배방산성의 둘레가 3,313척이고 높이가 13척이며 2개의 우물과 군창<軍倉>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현재에도 건물지로 추정되는 곳이 여러곳에서 보이며, 성내에서 백제시대토기편들이 흩어져 있어 백제시대에 축성된 것인 듯하다. 백제 개로왕 원년(445)에 성배와 성방이라는 쌍둥이 남매를 거느린 공수<公須>란 7순노파<7旬老婆>의 전설에서 배가 방에게 무릎을 꿇었다해서 두 남매의 이름을 따서 배방산 복부성<伏俯城>이라 했다는 전설이 있고 또 형태가 솥을 엎어 놓은 듯하다해서 복부성<伏釜城>이라 하기도 한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하여 쌓았다고 한다.
천안과 온양간의 국도 남쪽 표고 250m의 성재산에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길이 약 1,500m이며 석축으로 이루어진 석성이다. 대부분 무너져 돌무지만 보이나 성의 남쪽에 남아 있는 길이 15m정도의 석축에서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 사용한 석재는 두께 약 12m 길이 50㎝ 정도의 자연할석을 앞면만 다듬어 성벽을 쌓았다. 적심의 단면을 보면 토사를 섞지 않은 석재.잡석을 이용하여 너비 3∼4m에 약 40단(현재 남은 부분)을 모두 길이모쌓기로 하였다. 성벽은 하단보다 상단을 약간 내경<內傾>하도록 하였는데 복원 높이는 5∼6m정도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배방산성의 둘레가 3,313척이고 높이가 13척이며 2개의 우물과 군창<軍倉>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현재에도 건물지로 추정되는 곳이 여러곳에서 보이며, 성내에서 백제시대토기편들이 흩어져 있어 백제시대에 축성된 것인 듯하다. 백제 개로왕 원년(445)에 성배와 성방이라는 쌍둥이 남매를 거느린 공수<公須>란 7순노파<7旬老婆>의 전설에서 배가 방에게 무릎을 꿇었다해서 두 남매의 이름을 따서 배방산 복부성<伏俯城>이라 했다는 전설이 있고 또 형태가 솥을 엎어 놓은 듯하다해서 복부성<伏釜城>이라 하기도 한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하여 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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