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군 금성면 산운1리 171-3
북측에는 면내 명산으로 알려진 금성산(531m)이 있고 마을은 나지막한 구릉과 평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남측에는 창이들이라 불리우는 들판(논)이 있다. 이 마을에는 운곡당< 雲谷堂 >을 비롯하여 10여채가 넘는 전통가옥이 있는데 운곡당은 소우 이가발< 素宇 李家發 >의 형이 되는 운곡 이의발< 雲谷 李義發 >, [1768(영조44)~1849(헌종15) 조선시대 문신으로 정조19년(1795)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대사간, 승지, 병조참판 등을 지내고 지중추부사가 되어 기로소에 들어갔으며 헌종15년(1848) 형조판서가 되었으나 병으로 별세함]이 영월부사 재직시에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산운리는 수정계곡 아래 구름이 감도는 것이 보여 산운리라 하였다는 지명유래가 있으며 마을의 역사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명종 년간에 영천이씨< 永川李氏 >가 처음 입향하였다 전한다. 당초 이 가옥은 현소유자 이희춘< 李喜春 >의 6대조인 소우 이가발< 素宇 李家發 >이 19세기초에 건립하였다 전하며 안채는 1880년대에 개축하였다고 전한다. 남향하여 배치된 현 가옥은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안마당을 감싸고 있어 튼ㅁ자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남측 전면에는 ㅡ자형의 문간채가 있고 문간채의 서측에는 외측간이, 안채의 북서측에는 내측간이 있다. 안채, 사랑채 일곽의 서측으로는 별도의 담장을 돌려 공간을 형성하고 원림< 園林 >을 조성하였는데 중앙부에 안사랑채 또는 별당으로 불리우는 건물을 배치하고 그 남측으로는 연못과 수림< 樹林 > 및 보도< 步道 >를 조성하여 정원< 庭園 >을 꾸미고 서측 및 북측으로는 수림을 조성하였으며 나무는 소나무, 전나무, 반송, 청단풍, 백일홍, 대나무 등이며 안채와 사랑채에서 각각 출입할 수 있도록 별도의 협문(일각문)을 두었다. 우리나라 지도를 응용하여 조성하였다고 전하기도 하는 연못은 부정형의 곡선으로 되었고 호안은 자연 경사면으로 되었는데 입수구가 없이 과거에는 물을 길어다 채웠다 하며 출수구는 남측 담장밑으로 배수되도록 하였다. 본 가옥은 19세기에 건립된 상류가옥으로 간결하고 소박한 형태의 안채, 사랑채 및 문간채 등으로 이루어진 주거구역< 住居區域 > 일곽을 두고 연접하여 별도 구획된 담장안에는 각종 수목을 식재하고 연못 등을 조성한 원림을 꾸며 이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당시 상류가옥의 풍류와 운치를 볼 수 있으며 별서건축< 別墅建築 >의 좋은 연구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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