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시 월명동
군산을 내륙과 도서지방의 연결지로서 옛부터 용신당이 형성되어 육지 및 해상을 오가는 모든 사람들의 무사고와 풍어를 기원하는 민속굿이 세습무들의 흥겨운 노랫가락으로 용왕신을 달래는 용왕굿이 성행하였다.
군산지방은 무속이 매우 성행하여 세습무인 당골이 많아서 매년 음력 6월 초순이나 7월 초순에 용왕굿이 행하여 졌으나 1960년대 부터는 이를 보기 어렵게 되었는데 극히 드물게 선주들이 중심이 되어 강신무를 불러 행하는 용왕굿이 있을 뿐이다. 군산지방의 용왕굿은 내륙과 섬지방의 특징이 혼합되어 있는데 이는 군산지방의 지리적 조건과도 상관이 있다. 내륙지방의 용왕굿은 풍어제의 기능은 없고 방죽이나 내에서 물에 빠져 죽는 일이 없도록 기원하는 일이 주가 되고 있으나 도서지방의 용왕굿은 풍어를 위해서 물에서 죽은 혼백을 건져 천도하는 즉 풍어의 기능이 주가 되고 있는데 군산지방의 용왕굿은 이 두 가지 기능을 겸하고 있는 것이다.
용왕굿은 모두 일곱마당으로 용왕강신굿 → 부정굿 → 육갑해원풀이굿 → 선왕풀이굿 → 중천해원굿 → 기원굿→ 용왕사자풀이굿의 순으로 행해지며 무당은 5인 내지 6인이 동원되며 악기는 장고, 징, 아쟁, 단소 등이며 하루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굿이 진행되었으므로 무당들이 한 사람씩 일어서서 좌가를 부르면 다른 사람은 악기를 잡고 반주하는 식으로 교대로 굿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군산은 무당들의 구역이 둘로 나뉘어져 동부당골과 서부당골로 지역을 지켰는데 용왕굿행사는 전체 고을을 위한 큰 행사이기 때문에 동부당골과 서부당골이 합동으로 거행하였다.
용왕굿은 날짜를 잡으면 선주, 어장사, 배타는 사람들에게서 쌀과 과일, 무명베 등 필요한 것을 거두어 제물을 장만하고 굿을 여는 당일에는 지금의 해망동 선창 근처에 고군산 쪽을 바라보고 차일을 쳤으며 산신과 용왕을 같이 모시는
의미로 용왕굿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월명산 산신님을 모시는 대잡이굿을 했다.
이처럼 군산지방의 용왕굿은 대규모로 거행되었는데 현대화 과정에서 용왕굿을 하던 당집이 소멸되고 세습무의 굿도 그 맥이 끊겨 그동안 강신무와 법사들이 불교문화와 접목시켜 변형되어 행하던 것을 원광대 박순호교수와 군산문화원 이병훈 전(前)원장의 발굴과 고증 그리고 연출로 재현하게 되었는데 산신과 용신(바다신)을 한자리에 모셔 재난을 피하게 하는 굿으로서 신과 만나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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