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시 창성동 101
성점옥은 일명, 성운선(成雲仙)이라고도 하며, 1972년 순창 복흥에서 태어났다.14세때 당시 명창이었던 성채란(成彩蘭)의 눈에 띄어 정읍으로 나왔고, 그때부터 이정권(李正權)으로부터 본격적인 판소리 수업을 받았다.
송흥록(宋興祿),박만순(朴萬順),정정렬(丁貞烈),이기권(李起權)등으로 이어지던 뚜렷한 맥락속에서 정통판소리를 익힌 성점옥은 순창 출신의 장판개(張判介)와 김연수(金演洙)로부터도 소리를 전수받았다.21세때인 1974년부터 1983년까지 오직 전주에서만 생활하면서 향토국악의 진흥과 판소리 보존에 헌신해 온 그는 1969년에 여자로서는 처음으로 국악협회 전북지부장을 역임하였다. 성점옥의 목소리는 남성적이고 영웅적인 느낌을 주는 우조에 속하는가 싶으면, 어느 장면은 화려하고 명랑한 평조가 무리없이 솟아난다.그런가 하면 경쾌한 경드름이나, 씩씩한 설렁제도 있으며, 슬픈느낌을 주는 계면조도 판소리 사설의 장면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소리는 일반적으로 무사태평한 기분으로 여유만만한 창법을 구사한다고 해서 만조창(漫調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제일 즐겨 부르는 것은 흥보가에서도 비단타령이며, 판소리 12마당 가운데 현재 전해지고있는 다섯마당 모두를 부른다. 남송조의 아니리와 가수의 몸짓인 발림, 너름새,그리고 관중의 췸새소리는 소리의 리듬에서 자연발생하듯이, 그는 문화적 전통을 바탕으로 성숙된 예술을 창조하고 보존하며 발전시키는데 젊은이의 참여가 절실함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그는 전주 시립문화예술단 창악부 소속으로 향토를 지키려는 외길을 걷고 있는 자타가 공인하는 명창이다.
성점옥은 일명, 성운선(成雲仙)이라고도 하며, 1972년 순창 복흥에서 태어났다.14세때 당시 명창이었던 성채란(成彩蘭)의 눈에 띄어 정읍으로 나왔고, 그때부터 이정권(李正權)으로부터 본격적인 판소리 수업을 받았다.
송흥록(宋興祿),박만순(朴萬順),정정렬(丁貞烈),이기권(李起權)등으로 이어지던 뚜렷한 맥락속에서 정통판소리를 익힌 성점옥은 순창 출신의 장판개(張判介)와 김연수(金演洙)로부터도 소리를 전수받았다.21세때인 1974년부터 1983년까지 오직 전주에서만 생활하면서 향토국악의 진흥과 판소리 보존에 헌신해 온 그는 1969년에 여자로서는 처음으로 국악협회 전북지부장을 역임하였다. 성점옥의 목소리는 남성적이고 영웅적인 느낌을 주는 우조에 속하는가 싶으면, 어느 장면은 화려하고 명랑한 평조가 무리없이 솟아난다.그런가 하면 경쾌한 경드름이나, 씩씩한 설렁제도 있으며, 슬픈느낌을 주는 계면조도 판소리 사설의 장면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소리는 일반적으로 무사태평한 기분으로 여유만만한 창법을 구사한다고 해서 만조창(漫調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제일 즐겨 부르는 것은 흥보가에서도 비단타령이며, 판소리 12마당 가운데 현재 전해지고있는 다섯마당 모두를 부른다. 남송조의 아니리와 가수의 몸짓인 발림, 너름새,그리고 관중의 췸새소리는 소리의 리듬에서 자연발생하듯이, 그는 문화적 전통을 바탕으로 성숙된 예술을 창조하고 보존하며 발전시키는데 젊은이의 참여가 절실함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그는 전주 시립문화예술단 창악부 소속으로 향토를 지키려는 외길을 걷고 있는 자타가 공인하는 명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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