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재(艮齋) 전우(田愚) 선생은(1841년 ∼ 1922년) 이이(李珥)와 송시열(宋時烈)의 사상을 신봉하였으나, 주리(主理)와 주기(主氣)의 두 가지 학설을 모두 배척하고 절충적인 경향을 취한 유학자이다.
그는 한일합병을 통분하고 1910년부터 1922년까지 계화도(界火島)에 들어가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순양사(純陽祠)는 제자들이 1932년에 건립하였고,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 맛배지붕건물이며, 삼문기둥의 하반부는 돌을 깎아 만들어 세운 건물이다. 사당 안에는
간재선생의 제사를 모시고 있다.
200평 되는 대지에는 외삼문을 이어 자연석 담장이 둘러싸인 안에 계양사(繼陽祠)가 있고, 계양사의 좌측에는 당시 강당으로 사용되었던 계화재(繼華齋)가 있으며, 지금은 관리인이 살고 있다.
그는 한일합병을 통분하고 1910년부터 1922년까지 계화도(界火島)에 들어가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순양사(純陽祠)는 제자들이 1932년에 건립하였고,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 맛배지붕건물이며, 삼문기둥의 하반부는 돌을 깎아 만들어 세운 건물이다. 사당 안에는
간재선생의 제사를 모시고 있다.
200평 되는 대지에는 외삼문을 이어 자연석 담장이 둘러싸인 안에 계양사(繼陽祠)가 있고, 계양사의 좌측에는 당시 강당으로 사용되었던 계화재(繼華齋)가 있으며, 지금은 관리인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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