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1
건축년대<建築年代>를 기록한 문헌<文獻>이 없어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조선 성종실록에 성종6년(1475) 6월에 충청도 절도사 김서형<金瑞衡>이 가야산에 사냥을 나왔다가 산불을 내어 개심사의 건물이 화재로 전소된 것을 성종 15년(1484)에 대웅전<大雄殿>을 비롯 건물을 중창했다는 기록과 1914년도에 대웅전 건물을 해체 보수당시 마루도리속에서 조선 성종 15년(1484)에 중창했다는 묵서명이 발견되어 심검당<尋劍堂> 건물도 이때에 같이 중창된 것으로 추정된다. 심검당<尋劍堂>의 건축<建築>양식을 살펴보면 화강석재를 견치석으로 쌓은 기단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위에 원기둥을 세우고 주두<柱頭>위에 공포<供包>를 짜올린 주심포계<柱心包系> 양식이며 가구는 5량집이다. 초제공 밑 주두 아래로 운각<雲刻>을 한 보아지 형식으로 되어 있어 익공계와도 비슷한 점이 있다. 심검당의 평면배치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건물의 좌측에 정면 3칸, 측면 5칸의 덧집을 달았다.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집이다. 건물총면적은 111.4㎡(심검당 63.2㎡, 덧집 48.2㎡)
건축년대<建築年代>를 기록한 문헌<文獻>이 없어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조선 성종실록에 성종6년(1475) 6월에 충청도 절도사 김서형<金瑞衡>이 가야산에 사냥을 나왔다가 산불을 내어 개심사의 건물이 화재로 전소된 것을 성종 15년(1484)에 대웅전<大雄殿>을 비롯 건물을 중창했다는 기록과 1914년도에 대웅전 건물을 해체 보수당시 마루도리속에서 조선 성종 15년(1484)에 중창했다는 묵서명이 발견되어 심검당<尋劍堂> 건물도 이때에 같이 중창된 것으로 추정된다. 심검당<尋劍堂>의 건축<建築>양식을 살펴보면 화강석재를 견치석으로 쌓은 기단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위에 원기둥을 세우고 주두<柱頭>위에 공포<供包>를 짜올린 주심포계<柱心包系> 양식이며 가구는 5량집이다. 초제공 밑 주두 아래로 운각<雲刻>을 한 보아지 형식으로 되어 있어 익공계와도 비슷한 점이 있다. 심검당의 평면배치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건물의 좌측에 정면 3칸, 측면 5칸의 덧집을 달았다.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집이다. 건물총면적은 111.4㎡(심검당 63.2㎡, 덧집 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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