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 2109
1886년 수성대에 연재 송병선이 낙향하여 잠시 머물면서 건립되었던 곳이다.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고종 28년(1891년)에 재건하였으며, 6.25사변을 계기로 공산군의 숙영지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송병선의 자는 화옥(華玉), 호는 연재(淵齋)이며 송시열의 9대손이다. 평소에 성품이 강직하여 불의를 보면 참지 않았으며 양복으로 바꿔 입는 것을 반대하였으며 천주교와 양학을 배격하였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송병선은 조선말엽의 세태를 개탄하고 운둔생활을 하던 중 친구의 소개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 한다. 광무 9년(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수일간 단식을 하며 개선조건 10조를 고종에게 상소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강제로 대전 석남촌으로 옮겨지자 「전국민에게 보내는 글」, 「서사동지」에게 보내는 글을 짓고 1907년에 음독순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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