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시 인지면 남정리 산116-5
김두징선생<金斗徵先生>은 조선<朝鮮> 인조<仁組> 24년(1646)에 태어나 숙종<肅宗> 4년(1678)에 32세의 나이로 사망<死亡>했다. 공<公>의 넷째 조부<祖父> 김홍욱<金弘郁> 선생이 사사<賜死>된 강빈<姜嬪>과 유배되어 죽은아들의 억울함을 상소<上疏>하여 효종왕<孝子王>의 격분<激憤>을 사서 친국<親鞠>을 받다 장사<杖死>한후부터 후손들이 벼슬길에 나가지 못한 이유로 벼슬을 하지 못하고 사후에 사조참판<史曹參判>으로 증직<贈職>되었다. 21세되던 현종10년(1669)에 김유경<金有慶>을 낳아 그의 아들이 영조때에 대사헌<大司憲>, 공조판서<工曹判書>, 부제학<副提學>, 도승지<都承指> 등을 역임하였다. 김유경이 부친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여 중국의 해중오석<海中烏石>을 구해 묘비<墓碑>를 세웠다고 전한다. 비좌대<碑座臺>는 화강석으로 방형<方形>으로 조성하고 운문양<雲文樣>을 조각했고 탑신<塔身>은 해중오석<海中烏石>이며 기록된 글씨와 조각은 명필명각(名筆名刻>이다. 개석<蓋石>은 우진각형태로 이묵이 두 마리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웅크리고 있으며 옥개부<屋蓋部>밑의 처마부분에 목조건축물과 같이 부연, 연목, 2출목 포<包>가 조각된 전국에서 희귀<稀貴>한 포작비<包作碑>이다.
김두징선생<金斗徵先生>은 조선<朝鮮> 인조<仁組> 24년(1646)에 태어나 숙종<肅宗> 4년(1678)에 32세의 나이로 사망<死亡>했다. 공<公>의 넷째 조부<祖父> 김홍욱<金弘郁> 선생이 사사<賜死>된 강빈<姜嬪>과 유배되어 죽은아들의 억울함을 상소<上疏>하여 효종왕<孝子王>의 격분<激憤>을 사서 친국<親鞠>을 받다 장사<杖死>한후부터 후손들이 벼슬길에 나가지 못한 이유로 벼슬을 하지 못하고 사후에 사조참판<史曹參判>으로 증직<贈職>되었다. 21세되던 현종10년(1669)에 김유경<金有慶>을 낳아 그의 아들이 영조때에 대사헌<大司憲>, 공조판서<工曹判書>, 부제학<副提學>, 도승지<都承指> 등을 역임하였다. 김유경이 부친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여 중국의 해중오석<海中烏石>을 구해 묘비<墓碑>를 세웠다고 전한다. 비좌대<碑座臺>는 화강석으로 방형<方形>으로 조성하고 운문양<雲文樣>을 조각했고 탑신<塔身>은 해중오석<海中烏石>이며 기록된 글씨와 조각은 명필명각(名筆名刻>이다. 개석<蓋石>은 우진각형태로 이묵이 두 마리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웅크리고 있으며 옥개부<屋蓋部>밑의 처마부분에 목조건축물과 같이 부연, 연목, 2출목 포<包>가 조각된 전국에서 희귀<稀貴>한 포작비<包作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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