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시 읍내동 492
서령동헌< 西寧東軒 > 및 아문< 衙門 >은 조선< 朝鮮 > 고종< 高宗 > 4년(1867) 당시 서산군수< 瑞山郡守 > 오병선< 吳秉善 >에 의하여 중건된 것으로 조선< 朝鮮 > 후기< 後期 > 관아< 官衙 > 양식< 樣式 >을 잘 보여 준다. 서령동헌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기와집으로 서령관< 瑞寧館 >이란 현판< 懸板 >이 걸려 있는데 규모가 크며 우아하다. 서령아문은 군< 郡 > 청사< 廳舍 >의 외삼문< 外三門 >으로 풍악루< 風樂樓 >라고 불리었는데 현재 서령군문< 瑞寧郡門 >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으로 2층 누각< 樓閣 >인데 아래층은 출입할 수 있는 삼문< 三門 >이 있고 초석< 礎石 > 대신 석주< 石柱 >를 사용하였다.
서령동헌< 西寧東軒 > 및 아문< 衙門 >은 조선< 朝鮮 > 고종< 高宗 > 4년(1867) 당시 서산군수< 瑞山郡守 > 오병선< 吳秉善 >에 의하여 중건된 것으로 조선< 朝鮮 > 후기< 後期 > 관아< 官衙 > 양식< 樣式 >을 잘 보여 준다. 서령동헌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기와집으로 서령관< 瑞寧館 >이란 현판< 懸板 >이 걸려 있는데 규모가 크며 우아하다. 서령아문은 군< 郡 > 청사< 廳舍 >의 외삼문< 外三門 >으로 풍악루< 風樂樓 >라고 불리었는데 현재 서령군문< 瑞寧郡門 >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으로 2층 누각< 樓閣 >인데 아래층은 출입할 수 있는 삼문< 三門 >이 있고 초석< 礎石 > 대신 석주< 石柱 >를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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