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시 대천동 171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후<受復後> 성주산<聖住山> 주변 일대의 공산잔당을 토벌하기 위해 1951년 건립 하였다. 자연석과 시멘트를 t섞어 찰쌓기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망루<望樓>안에는 4층<層>의 목<木>계단이 있고, 밖으로 사격할 수 있는 총구<銃口>(안<眼>)가 22개 있다. 지붕은 팔각<八角>이며, 정오<正午>.자정<子正>을 알리는 소리와, 통행금지, 화재와 비상시, 사이렌을 울리던 시설물로 최근까지 사용하였다.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후<受復後> 성주산<聖住山> 주변 일대의 공산잔당을 토벌하기 위해 1951년 건립 하였다. 자연석과 시멘트를 t섞어 찰쌓기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망루<望樓>안에는 4층<層>의 목<木>계단이 있고, 밖으로 사격할 수 있는 총구<銃口>(안<眼>)가 22개 있다. 지붕은 팔각<八角>이며, 정오<正午>.자정<子正>을 알리는 소리와, 통행금지, 화재와 비상시, 사이렌을 울리던 시설물로 최근까지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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