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시 남포면 읍내리 378
남포관아문<官衙門>은 조선시대<朝鮮時代> 람포현<藍浦縣>과 외곽<外廓>을 두루고 있는 람포읍성<藍浦邑城> 정문<旌門>으로 진서루<鎭西樓>는 외삼문<外三門>, 옥산아문<玉山衙門>은 내삼문<內三門>이었다. 조선<朝鮮> 태종<太宗> 6년(1397년) 병마사<兵馬使>를 두어 현사<縣事>를 겸<兼>하게 하다가 세종<世宗> 1년(1466년) 진<鎭>을 현<縣>으로 고쳐 두었다. 당시 객사<客舍>, 동헌<東軒>, 아사<衙舍>, 향청<鄕廳>, 작청<作廳>, 현사<縣司>등 관아건물<官衙建物>이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기록<記錄>으로 전<傳>한다. 현존<現存> 건물 3동<棟>이 원형보존<原形保存>, 문화재<文化財>로 지정<指定> 보존<保存>되고 있다. 진서루<鎭西樓>는 정면<正面> 3칸, 측면<側面> 2칸의 중층루각<中層樓閣>으로 하층<下層>에 삼문<三門>을 설치<設置> 동헌<東軒>의 출입문<出入門>으로 사용하였다. 옥산아문<玉山衙門>은 내삼문<內三門>으로 정면<正面> 7칸, 측면<側面> 1칸으로 양쪽에 1칸씩 홍살과 익실<翼室>을 두었다. 동헌<東軒>은 현감<縣監>의 집무건물<執務建物>로 정면<正面> 7칸 측면<側面> 3칸 중앙<中央>에 2칸의 우물정<井> 마루를 두고 좌<左>·우편<右片>에 4칸의 작은 방을 두었고, 장초석<長礎石>, 덤벙주초에 원기둥으로 건립하였다.
남포관아문<官衙門>은 조선시대<朝鮮時代> 람포현<藍浦縣>과 외곽<外廓>을 두루고 있는 람포읍성<藍浦邑城> 정문<旌門>으로 진서루<鎭西樓>는 외삼문<外三門>, 옥산아문<玉山衙門>은 내삼문<內三門>이었다. 조선<朝鮮> 태종<太宗> 6년(1397년) 병마사<兵馬使>를 두어 현사<縣事>를 겸<兼>하게 하다가 세종<世宗> 1년(1466년) 진<鎭>을 현<縣>으로 고쳐 두었다. 당시 객사<客舍>, 동헌<東軒>, 아사<衙舍>, 향청<鄕廳>, 작청<作廳>, 현사<縣司>등 관아건물<官衙建物>이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기록<記錄>으로 전<傳>한다. 현존<現存> 건물 3동<棟>이 원형보존<原形保存>, 문화재<文化財>로 지정<指定> 보존<保存>되고 있다. 진서루<鎭西樓>는 정면<正面> 3칸, 측면<側面> 2칸의 중층루각<中層樓閣>으로 하층<下層>에 삼문<三門>을 설치<設置> 동헌<東軒>의 출입문<出入門>으로 사용하였다. 옥산아문<玉山衙門>은 내삼문<內三門>으로 정면<正面> 7칸, 측면<側面> 1칸으로 양쪽에 1칸씩 홍살과 익실<翼室>을 두었다. 동헌<東軒>은 현감<縣監>의 집무건물<執務建物>로 정면<正面> 7칸 측면<側面> 3칸 중앙<中央>에 2칸의 우물정<井> 마루를 두고 좌<左>·우편<右片>에 4칸의 작은 방을 두었고, 장초석<長礎石>, 덤벙주초에 원기둥으로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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