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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짜기 - 어떤 견직물보다도 포근하고 따스하며 우아 질감의 명주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우리나라에서는 문헌을 통해 볼 때 기원전 2∼3세기, 즉 삼한시대부터 직물을 짜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견직물도 이때부터 남부지방에서 생산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삼국시대로 접어들면서 직물이 발달하여 주< 紬 >가 생산되었다. 주는 굵은 실로 짜여진 것으로 주로 중류층의 속옷으로, 또는 평인의 옷으로 사용되었다. 고려로 넘어오면서도 생산기법에는 큰 변화가 없이 이전의 것을 계승하여 왔으나 질이 좋은 고운 주가 본격적으로 생산되어 품질을 구분하기도 하였다. 조선조에 오면서는 종류가 다양해져서 색과 품질로써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리고 견중에서 명주가 가장 많이 생산되어 남녀노소 모두에게 일상적인 의료< 衣料 >로서 사용되었다. 명주는 뽕나무를 키워서 그 잎으로 누에를 키우고, 누에가 만든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서 수직기로 여자들이 짜낸 것으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현재는 기계생산에 의하여 공장에서 짜여지며 수의용으로 쓰여져왔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서는 우리의 것을 찾는 마음에서 또 그 가치를 인정하면서 명주로 옷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었다. 우리옷은 단아하고 청초하며 품위를 지녀야만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따라서 한복의 옷감으로는 명주를 으뜸으로 생각해왔다. 명주야말로 한복의 미의 특성을 잘 살려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옛부터 내려오는 명주짜기의 기법을 계승하고 있는 경상도 성주 두리실에서는 뽕나무를 재배하고 명주를 짜서 왕실에 바쳐왔다. 그러나 지금은 중요무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된 두리실 명주짜기의 조옥이할머니가 명맥을 이어 계승하고 있다. 또한 길쌈하는 데 필요한 도구들을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데, 그 중에서도 명주짜는 바디와 북을 각각 100점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명주의 질감은 어떤 견직물보다도 포근하고 따스하며 우아하다. 그러나 손질법이 복잡하여 애용되지 못했으나, 앞으로 가공법을 연구하여 우리 것을 살리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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