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김제시 금구면
이곳은 구한말 충신 장태수(1841∼1910) 선생이 순국한 집이다. 선생은 철종 12년(1861)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고종 6년(1869) 양산군수로 부임하자 군기를 정비하고 별포군을 길러내는 등 국방에 힘썼다. 또 병조참의·돈녕부도정·대사간 등 요직을 지낸 다음 고종 31년(1894) 동학혁명때는 고산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고종황제의 선위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신명학교를 세워 인재를 길러냈으나 일제에 의해 폐교되었다. 한일합방 후 일제가 회유책으로 보낸 은사금을 거절하고 『자죄문』을 지어 망국을 자책하는 한편, 『고대한동포문』을 통해 애절한 우국충정을 동포에게 호소하고 절식한 지 27일 만인 1910년 11월 27일 순국하였다. 이 건물은 자연석 기단 위에 세워진 정면 4칸, 측면 4칸의 초가지붕건물이다. 초석은 덤벙주초이며 그 위에 세워진 기둥은 모두 네모기둥이다. 평면의 배치는 중앙의 전면 2칸에 마루를 깔고, 가운데에 큰 방을 두었고, 좌·우로는 방과 대청을 꾸몄다. 사랑방 뒤로는 다락을, 큰 방 뒤로는 부엌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건실한 느낌을 주며 사라져가는 이 지방 초가집의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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