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567
마곡사 대광보전<大光寶殿> 5층 석탑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요사채와 그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창고건물이다. 심검당은 'ㄷ'자 평면에 자연석을 쌓아 한벌의 기단<基壇>을 조성하고 덤벙 주초석을 놓은 위에 둥글고 네모난 기둥을 혼합하여 세웠다. 공포<拱包>는 간결한 양봉<양奉>만 결구되어 있는 납도리 계통의 접으로 내부에는 우물천장이 가설되어 있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정면 6칸, 측면 4칸의 동향한 본채에서 북단 4칸, 남단 2칸을 동쪽으로 5칸씩 달아낸 형태이다. 또 남쪽 중간에는 사방 2칸을 달아내어 방과 마루를 들여 요사<寮舍>로 쓰고 있다. 고방<庫房>은 정면 4칸, 측면 1칸의 남향집이다. 마곡사는 30본산의 하나로, 충남지방의 모든 사찰을 통괄했던 대찰이었으나 여러 번 화재를 입어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철종 2년(1815)에 작성된 태화산<泰華山> 마곡사사적입안<麻谷寺事蹟立案>에 의하면 신라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여 고려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재건하였다고 적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이곳에 와서 영산전<靈山殿>이라는 편액<篇額>을 직접 써서 내렸고 잡역을 면제하는 교지를 내렸으나 모두 임진왜란때 불이 나서 불타 없어졌다. 효종 원년(1650)부터 10년간 주순<주淳> 주지의 노력으로 사원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는데 정조 6년(1782)에 다시 큰불이 일어나 대법당 대광보전을 비롯한 1,050칸이 불탔다. 이 때 영산전과 대웅전은 화를 면하였다. 현재 마곡사에 있는 건물은 모두 1782년 이후에 재건된 건물들인데 부속건물들의 재건 연대에 대해서는 사적입안에 잘 기록되어 있다. 심검당<尋劍堂>은 언제 창건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정조 21년(1797)년에 중수된 기록이 사적입안<事蹟立案>에 나오고 전내<殿內>의 편액<篇額> 명문에 의하면 함풍<咸豊> 6년(1856)년에 중수하고 3년(1909)에 기와를 다시 올린 기록이 남아 있다. 마곡사에는 대웅보전<大雄寶殿>(보물 제 801호), 대광보전<大光寶殿>(보물 제 802호), 영산전<靈山殿>(보물 제 800호)을 비롯하여 많은 건물과 탱화, 전적, 판본들이 남아 있다.
마곡사 대광보전<大光寶殿> 5층 석탑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요사채와 그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창고건물이다. 심검당은 'ㄷ'자 평면에 자연석을 쌓아 한벌의 기단<基壇>을 조성하고 덤벙 주초석을 놓은 위에 둥글고 네모난 기둥을 혼합하여 세웠다. 공포<拱包>는 간결한 양봉<양奉>만 결구되어 있는 납도리 계통의 접으로 내부에는 우물천장이 가설되어 있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정면 6칸, 측면 4칸의 동향한 본채에서 북단 4칸, 남단 2칸을 동쪽으로 5칸씩 달아낸 형태이다. 또 남쪽 중간에는 사방 2칸을 달아내어 방과 마루를 들여 요사<寮舍>로 쓰고 있다. 고방<庫房>은 정면 4칸, 측면 1칸의 남향집이다. 마곡사는 30본산의 하나로, 충남지방의 모든 사찰을 통괄했던 대찰이었으나 여러 번 화재를 입어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철종 2년(1815)에 작성된 태화산<泰華山> 마곡사사적입안<麻谷寺事蹟立案>에 의하면 신라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여 고려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재건하였다고 적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이곳에 와서 영산전<靈山殿>이라는 편액<篇額>을 직접 써서 내렸고 잡역을 면제하는 교지를 내렸으나 모두 임진왜란때 불이 나서 불타 없어졌다. 효종 원년(1650)부터 10년간 주순<주淳> 주지의 노력으로 사원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는데 정조 6년(1782)에 다시 큰불이 일어나 대법당 대광보전을 비롯한 1,050칸이 불탔다. 이 때 영산전과 대웅전은 화를 면하였다. 현재 마곡사에 있는 건물은 모두 1782년 이후에 재건된 건물들인데 부속건물들의 재건 연대에 대해서는 사적입안에 잘 기록되어 있다. 심검당<尋劍堂>은 언제 창건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정조 21년(1797)년에 중수된 기록이 사적입안<事蹟立案>에 나오고 전내<殿內>의 편액<篇額> 명문에 의하면 함풍<咸豊> 6년(1856)년에 중수하고 3년(1909)에 기와를 다시 올린 기록이 남아 있다. 마곡사에는 대웅보전<大雄寶殿>(보물 제 801호), 대광보전<大光寶殿>(보물 제 802호), 영산전<靈山殿>(보물 제 800호)을 비롯하여 많은 건물과 탱화, 전적, 판본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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