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산 13-1
옥종면 북방리 고성산에 있다. 성이 언제 축조되었는지는 확실하게 알수 없으나 1770년대까지 성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산성은 성으로서 보다 1894 년에 일어난 동학운동의 항일적전지로 길이 보존되어야 할 곳이다. 동학운동은 정월봉기, 3월봉기, 9월봉기로 분류되는데 이 9월봉기는 일본의 부당한 국권침해에 대응한 민족의 위급을 구하고자 일어난 구국항쟁이었다.
9월 봉기에 있어서 진주의 동학농민군 5,000여명은 고성산성에 석벽을 쌓고 일본군과 격전을 벌였으나 일본군의 신식무기 앞에 엄청난 희생자를 냈다.
당시의 일본군 보고서에 나타난 것만 해도 전사자 186명이고 퇴로에서 쓰러진 자, 부상자 등도 수십명이라고 한다. 광복후 전라, 충청, 강원도 지역의 유적지는 사적지로 지정 또는 기념비 등이 건립되었으나 구국항일운동의 대전적지인 이곳은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고장 출신 인사들이 고성산성 항일 전적지보존회를 조직하여 동학혁명 100주년에 즈음하여 1995년 3월 22일 <동학혁명위령탑>을 세웠다.
옥종면 북방리 고성산에 있다. 성이 언제 축조되었는지는 확실하게 알수 없으나 1770년대까지 성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산성은 성으로서 보다 1894 년에 일어난 동학운동의 항일적전지로 길이 보존되어야 할 곳이다. 동학운동은 정월봉기, 3월봉기, 9월봉기로 분류되는데 이 9월봉기는 일본의 부당한 국권침해에 대응한 민족의 위급을 구하고자 일어난 구국항쟁이었다.
9월 봉기에 있어서 진주의 동학농민군 5,000여명은 고성산성에 석벽을 쌓고 일본군과 격전을 벌였으나 일본군의 신식무기 앞에 엄청난 희생자를 냈다.
당시의 일본군 보고서에 나타난 것만 해도 전사자 186명이고 퇴로에서 쓰러진 자, 부상자 등도 수십명이라고 한다. 광복후 전라, 충청, 강원도 지역의 유적지는 사적지로 지정 또는 기념비 등이 건립되었으나 구국항일운동의 대전적지인 이곳은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고장 출신 인사들이 고성산성 항일 전적지보존회를 조직하여 동학혁명 100주년에 즈음하여 1995년 3월 22일 <동학혁명위령탑>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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