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산 107-1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4세에 성균시에 합격하였으며 원나라의 국자감 생원이 되어 3년간 유학하였고, 정몽주, 김구용 등과 명륜당에서 학문을 강론하니 이로부터 성리학이 일어났다.
조선조 개국후 태조가 그의 인재를 아껴 한산맥으로 통하여 예를 다하여 출 사를 종용하였으나 끝내 고사하고 망국의 사대부는 오로지 해골을 고산에 파묻을 뿐이라고 하였다.
문하에 권근 등을 배출하여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으며 한편 불교에 대한 조예도 깊었으며 고려말기의 학문과 정치에 거족을 남긴 분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4세에 성균시에 합격하였으며 원나라의 국자감 생원이 되어 3년간 유학하였고, 정몽주, 김구용 등과 명륜당에서 학문을 강론하니 이로부터 성리학이 일어났다.
조선조 개국후 태조가 그의 인재를 아껴 한산맥으로 통하여 예를 다하여 출 사를 종용하였으나 끝내 고사하고 망국의 사대부는 오로지 해골을 고산에 파묻을 뿐이라고 하였다.
문하에 권근 등을 배출하여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으며 한편 불교에 대한 조예도 깊었으며 고려말기의 학문과 정치에 거족을 남긴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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