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시 의당면 태산리 101
이 곳은 조선 정종의 열번째 아들인 덕천군(<德泉君>, 1397∼1456)을 모신 사당이다. 원래 연기군 남면 방축리<防築里>에 있던 사당을 건물이 낡아 영조 15년(1739)에 현재 위치로 옮겨 고쳐 지었다. 덕천군은 왕자의 신분임에도 들에 나가 농사일을 하였고, 가난한 이웃을 지성으로 도왔다. 어느 해 여름에 홍수로 금강이 범람하여 수백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자 공이 구제하였으므로 덕을 쌓은 어른이라 하여 적덕공<積德公>이라고 불렀다. 묘소는 원래 경기도 광주군 남한산성 서문 밖에 있던 것을 1974년에 현재 사우<祠宇>가 있는 문중 묘역으로 옮겼으며, 신도비<神道碑>는 10대손인 이광사가 순조 8년(1808)에 세웠다.
이 곳은 조선 정종의 열번째 아들인 덕천군(<德泉君>, 1397∼1456)을 모신 사당이다. 원래 연기군 남면 방축리<防築里>에 있던 사당을 건물이 낡아 영조 15년(1739)에 현재 위치로 옮겨 고쳐 지었다. 덕천군은 왕자의 신분임에도 들에 나가 농사일을 하였고, 가난한 이웃을 지성으로 도왔다. 어느 해 여름에 홍수로 금강이 범람하여 수백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자 공이 구제하였으므로 덕을 쌓은 어른이라 하여 적덕공<積德公>이라고 불렀다. 묘소는 원래 경기도 광주군 남한산성 서문 밖에 있던 것을 1974년에 현재 사우<祠宇>가 있는 문중 묘역으로 옮겼으며, 신도비<神道碑>는 10대손인 이광사가 순조 8년(1808)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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