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54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최초로 승병<僧兵>을 일으켜 승병 궐기의 계기를 만든 영규대사∼1592)의 정려비<旌閭碑>이다. 대사는 유평리에서 태어나 계룡산 갑사 청련암<淸連庵>에서 수도 하였고,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였다. 왜인의 침략과 약탈에 분을 참지 못하여 3일을 통곡하고 승려 수백 명을 모아 승병장이 되었다. 의병장 조헌과 합세하여 청주성을 탈환하고, 이어 금산 연곤평 전투에 참가하였다. 이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고 이곳 월암리까지 와서 숨을 거두었다. 정려 좌측에 있는 비문에 숭정 기원후 계유년<崇禎紀元後癸酉年>으로 되어 있어 숙종 19년(1693)에 세워진 것으로 되어 있으나, 비를 세운 이덕윤<李德潤>·유중<劉重>·각총스님<覺聰>·박경태<朴景泰> 등의 생존 연대를 보면 13년(1813)에 건립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최초로 승병<僧兵>을 일으켜 승병 궐기의 계기를 만든 영규대사∼1592)의 정려비<旌閭碑>이다. 대사는 유평리에서 태어나 계룡산 갑사 청련암<淸連庵>에서 수도 하였고,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였다. 왜인의 침략과 약탈에 분을 참지 못하여 3일을 통곡하고 승려 수백 명을 모아 승병장이 되었다. 의병장 조헌과 합세하여 청주성을 탈환하고, 이어 금산 연곤평 전투에 참가하였다. 이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고 이곳 월암리까지 와서 숨을 거두었다. 정려 좌측에 있는 비문에 숭정 기원후 계유년<崇禎紀元後癸酉年>으로 되어 있어 숙종 19년(1693)에 세워진 것으로 되어 있으나, 비를 세운 이덕윤<李德潤>·유중<劉重>·각총스님<覺聰>·박경태<朴景泰> 등의 생존 연대를 보면 13년(1813)에 건립된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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