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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장군유적 - 무장(武將) 신유 장군을 모신 사당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 산 21외 16필

이곳은 조선< 朝鮮 > 효종< 孝宗 > 때의 무장< 武將 > 신유(1619∼1680) 장군은 모신 사당< 祠堂 >이다. 장군은 광해군< 光海君 > 11년(1619)에 이 고장에서 출생하여 27세에 무과< 武科 >애 급제, 선전관< 宣傳官 > 등 여러 무직< 武職 >을 거쳐 함경북도< 咸鏡北道 > 병마우후< 兵馬虞後 >로 있을 때 청< 淸 >나라 요청을 받아 효종 9년(1658) 원군을 이끌고 만주에 원정하여 흑룡강< 黑龍江 > 부근에서 그곳을 침입한 스테파노프가 이끄는 러시아군을 거의 전멸시키는 큰 공을 세웠다. 이를 '나선정벌< 羅禪征伐 >'이라 하며 장군은 이 원정의 전말< 顚末 >을 『북정일기< 北征日記 >』라는 기록으로 후세에 남겼다. 장군은 그후 경상우수사< 慶尙右水使 >, 전라좌수사< 全羅左水使 >, 경상좌도< 慶尙左道 >, 황해도< 黃海道 > 병마절도사< 兵馬節度使 >, 삼도수군통제사< 三道水軍統制使 >, 포도대장< 捕盜大將 > 등을 역임했다. 이 사당과 경역은 1979∼1981년에 정부에서 보수 정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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