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송군 진보면 세장리 477
이 서당<書堂>은 조선<朝鮮> 숙종시<肅宗時> 영남학파<嶺南學派>인 존재<存齋> 이휘일<李徽逸>(1619∼1672)선생<先生>의 유업<遺業>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英祖> 33년(1757)에 현감<縣監> 조명협<曺命協>의 발의<發議>로 향중<鄕中>에서 건립<建立>하였다. 그 후 영조<英祖>때 중수<中修>하였고 1928년 화재<火災>로 우물마루 일부<一部>가 피해<被害>를 입어 보수<補修>하였으며, 임하<臨河>댐 수몰<水沒>로 1989년 현위치<現位置>로 이건<移建>하였다. 이 건물은 정면<正面> 4칸, 측면<側面> 2칸반의 팔작<八作>지붕으로 자연석<自然石> 기단<基壇>위에 주초<柱礎>를 놓고 원주<圓柱>를 세워 중앙<中央> 2칸에 우물마루를 깔아 좌<左>·우<右>에 온돌방<溫突房>을 두었으며, 전면<全面>에는 계자난간<鷄子欄杆>을 한 이익공<二翼工>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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