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 949-107
현< 現 > 소유자< 所有者 >의 2대조< 代祖 >인 조선< 朝鮮 > 고종< 高宗 > 때 행장릉참봉< 行莊陵參奉 >을 지낸 임춘섭< 林春燮 >이 이집을 매수하였다 하며 그 이전< 以前 >의 사실은 알 수가 없으나 대체로 200년< 年 > 이상< 以上 >된 건물< 建物 >로 추정된다. 100여호< 餘戶 > 되는 이 마을은 서< 西 >쪽으로 올라간 경사지에 자리를 잡았으며 마을의 주택< 住宅 >들은 대체로 동< 東 >쪽의 낮은 지역에 흐르는 용전천< 龍纏川 >을 내려다보며 동향< 東向 >으로 배치< 配置 >되어 있다. 본< 本 > 가옥< 家屋 >은 마을의 서< 西 >쪽 높은 곳에 자리 잡았고 대지< 垈地 > 남< 南 >쪽의 길을 향하여 남향< 南向 > 대문< 大門 >을 세웠으며 마당을 끼고 ㅁ자< 字 >집이 배치< 配置 >되었는데 사랑방과 통래간이 남향< 南向 >하여 정면< 正面 >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ㅁ자형< 字形 > 평면< 平面 >에 사랑뒷방이 서< 西 >쪽으로 1간< 間 > 돌출< 突出 >하여 ㅁ형< 形 >으로 되었다. 대문간에서 바라본 긴 남쪽 정면< 正面 >에 설치된 통래간< 通來間 >(중문간< 中門間 >)을 들어서면 안마당에 이르고 좌측< 左側 >에 동향< 東向 >하여 전면< 前面 >이 개방< 開放 >된 안마루가 놓여 있다. 마루의 좌측< 左側 >에는 사랑방이, 우측< 右側 >에는 뒷방과 큰방이 대칭< 對稱 >으로 배치< 配置 >되었고 앞채에 부엌, 고방, 외양간이 꾸며져 있다. 손바닥만한 안마당위에는 지붕 처마가 사방에서 돌출하여 하늘이 조그맣게 보인다. 만약 좁은 안마당을 지붕으로 다 덮어버렸다고 가정하면 현재< 現在 >의 평면구성< 平面構成 >은 강원도< 江原道 > 남부지역< 南部地域 >에서 볼 수 있는 9간< 間 > 두리집과 거의 흡사하다. 다른점이 있다면 내객< 來客 >의 사랑방 출입< 出入 >은 앞마당에서 직접 사랑방으로 드나들게 하였고, 강원도 지방에서 볼 수 있는바와같이 통래간< 通來間 >에서 사랑방으로 드나들 수 있는 문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집은 원래 사랑방의 통래간쪽 반간< 半間 >이 쌀 뒤주였다고 한다. 마루에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뒷벽에는 기둥 좌우< 左右 >에 외여닫이 널문을 한짝씩 달았다. 마루 상부< 上部 >의 가구< 架構 >는 삼량가< 三樑架 >이지만 좀 특별한 구조< 構造 >를 보이고 있다. 즉 사랑방 벽과 큰방의 모서리에 세운 기둥 위에 마루를 가로질러 큰 부재< 部材 >를 보내고 그 위에 보를 걸쳐서 마당쪽으로 외팔보처럼 돌출시키고 그 끝에 처마도리를 놓아서 지붕을 구성하였다. 행랑채는 3간< 間 >의 우단< 右端 >이 대문간< 大門間 >이고 어간< 御間 >이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으며 좌측< 左側 >은 온돌방< 溫突房 >이다. 안채와 더불어 몹시 퇴락한 상태이며 초가지붕이다. 본< 本 > 주택< 住宅 >의 평면구성< 平面構成 >은 ㅁ자형< 字形 >의 최소규모< 最小規模 >로서 청송지방< 靑松地方 >에서 볼 수 있는 ㅁ형< 形 >의 배치방식< 配置方式 >을 수용하고 있으며 강원도< 江原道 > 남부지방< 南部地方 >의 9간< 間 > 두리집과도 통< 通 >하는 면< 面 >을 보이고 있어 민가평면< 民家平面 > 연구< 硏究 >의 좋은 자료< 資料 >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 마루 상부< 上部 >의 지붕틀 가구형식< 架構形式 >도 특이한 바가 있어 주목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