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796-3
호벌치 전적지는 정유재란 때 이 지방의 의병들이 맨주먹으로 왜병을 맞아 혈전을 벌여 장렬하게 전사한 호벌치 고개의 싸움터를 말한다. 정유재란(1597년)은 임진왜란과는 달리 그들의 주력부대를 전라도에 투입하여 호남 각지가 적에게 유린되었는데, 왜병들이 바다를 이용, 변산에 상륙하여 줄포로 부터 부안읍에 진격하여왔다. 이때 채홍국, 김영년등의 의병들과 다른 동지 33인이 더 참가하여 1월 27일에 호벌치 고개에서 왜병을 맞아 싸우게 되었다.
당시의 순절기에 의하면 3월 23일에 배풍령(排風嶺) 싸움에서 채홍조가 전사하였고, 24일에는 이탁과 승 만세(僧 萬世), 김영 등이 전사하였다. 4월 16일에는 채우령과 이시화가 전사하였으며, 4월 17일에는 이익성이 전사하였고, 4월 18일에는 임추가 전사하였으며, 4월19일에는 오몽서와 김귀복이 전사하였다. 4월 20일의 전투에서는 조익령이 적의 급습을 받아 위급하게 되자 채홍국이 이를 구하려다 적의 칼을 맞아 위급하였다. 그러자 그의 두 아들 명달, 처달이 부친을 구하려 했으나 늦어서 숨지고 말았다. 두 아들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적진에 뛰어들어 분전하고 장렬하게 전사하니, 이로써 채홍국 삼부자는 모두 이곳 호벌치 싸움에서 호국의 영령이 되었다.
또한 유희방, 이유, 김홍원, 김경덕, 김경장, 권대붕 등이 별도의 의병을 거느리고 싸웠다. 유희방은 적병 수백명의 머리를 베는 수훈을 세우고, 9월 15일에 전사하였다. 이유는 감교리(甘橋里)의 청등(靑燈) 고개에서 3일간의 치열한 싸움 끝에 전사하였다. 그러자 그의 부인 부안김씨 역시 부군이 전사한 것을 보고 죽창을 들고 적의 진중에 뛰어들어 싸우다 죽었다. 또한 김홍원은 별도의 의병을 거느리고 곳곳에서 큰 공을 세운 바 있는데, 이곳 싸움에 참여하여 적의 토로를 끊고 수륙양면작전을 감행하여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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