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무주군 안성면 공정리 산6
1907년 일본의 강압으로 정미칠조약이 체결되고 구한국 군대가 해산되자 울분을 참지 못한 시위대출신 장교 신명선은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150여명의 의병을 모으고 덕유산을 근거지로 삼아 무주·진안·장수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워 수많은 공적을 남겼다.
1908년 4월 어느날 신명선 장군은 인근의 장수 공격을 마치고 칠연계곡 병막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부대를 정비하고 안성에 주둔중이던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고자 행군하던 중 계곡에 잠복중이던 일본군의 협공을 받고 대항할 틈도 없이 전대원과 함께 전사하여 이 곳에 묻히게 되었다. 뒤에 부근 주민들이 의병들의 유해를 모아 이곳에 묻어 놓고 이를 7연총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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