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381
대전∼공주간의 국도에 인접한 곳에 동향하여 서 있다. 서원지는 주위에 사괴석 담장이 둘러져 있고 뒤뜰에는 희귀한 단풍나무, 고목들이 자라고 있다. 중앙보다 약간 뒤편에 석조 기단이 있는데 1976년에 이곳에 사당을 새로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익공계의 건물이다. 건물입구를 향하여 도로 양편에 서원의 유래를 적은 석비들이 서 있다. 선조 14년(1581)에 서기<徐起>가 중국에서 주자의 영정을 모셔다가 박약재<博約齋>라는 서원을 세우고 모셨는데 후에 이존오<李存오>, 이목<李穆>, 함제원<咸悌元>도 배향하였다. 후에 유림에서 김장생<金長生>, 조헌<趙憲>,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 서기<徐起>도 추배하였는데 인조 25년(1625) 충현서원으로 사액되었다. 대원군 때 훼철되었다가 유림의 모금으로 재견된 것이다. 서기<徐起>(1523∼1519)는 조선시대의 학자로 이천인<李川人>이다. 제자백가와 기술이론에 통달하였고 서경덕, 이지함에세 배웠다. 지리산과 계룡산에서 후학에 힘썼다
대전∼공주간의 국도에 인접한 곳에 동향하여 서 있다. 서원지는 주위에 사괴석 담장이 둘러져 있고 뒤뜰에는 희귀한 단풍나무, 고목들이 자라고 있다. 중앙보다 약간 뒤편에 석조 기단이 있는데 1976년에 이곳에 사당을 새로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익공계의 건물이다. 건물입구를 향하여 도로 양편에 서원의 유래를 적은 석비들이 서 있다. 선조 14년(1581)에 서기<徐起>가 중국에서 주자의 영정을 모셔다가 박약재<博約齋>라는 서원을 세우고 모셨는데 후에 이존오<李存오>, 이목<李穆>, 함제원<咸悌元>도 배향하였다. 후에 유림에서 김장생<金長生>, 조헌<趙憲>,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 서기<徐起>도 추배하였는데 인조 25년(1625) 충현서원으로 사액되었다. 대원군 때 훼철되었다가 유림의 모금으로 재견된 것이다. 서기<徐起>(1523∼1519)는 조선시대의 학자로 이천인<李川人>이다. 제자백가와 기술이론에 통달하였고 서경덕, 이지함에세 배웠다. 지리산과 계룡산에서 후학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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