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시 금성동 58
공산성 내 남쪽에 있는 영은사의 앞 대지<臺地>에 있다. 동서로 석축한 성곽 밖 금강변 쪽에 있으며 동서가 긴 평면 장방형이다. 규모는 최대 길이가 21㎝, 너비는 약 12㎝ 이다. 호안석축은 단을 두어 쌓았는데 전체적이 모습은 위를 넓게 하고 아래를 좁혀 쌓았다. 이는 9층 석탑을 거꾸로 세워 놓은 듯한 형태와 흡사하다. 서측호안이 남쪽에 접해서 10 여개의 계단을 설치하여 출입 통로를 두었는데 계단은 다듬은 돌 2개씩을 포개 쌓았다. 이 통로는 호안석 상계단에서 아래로 4m 되는 지점에서 북쪽으로 90˚로 한번 꺾이어 제단이 설치되어 연지의 바닥까지 출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바닥은 판석으로 깔았고 동서 9m, 납북 4m의 규모이다. 연지의 인수구<引水口>는 특별히 시설된 것은 없는 것 같다. 연지 둘레의 동서벽에서 북쪽 금강변 호안으로 너비 40㎝의 배수로가 설치되었고 현재도 석루두<石漏頭>가 남아 있다. 이 연지의 북쪽과 금강 호안 사이의 대지에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복원할 수 있는 정면 4개, 측면 3개의 8각 고주가 발굴되었는데, 측면 중앙에 누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승가대석<昇架臺石>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누각 건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82∼1983까지 공주사범대학에서 발굴하여 유적지가 확인되었으며 이 연지는 백제시대부터 계속하여 이용되어 왔음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암문<暗문>을 통해 연지에 닿을 수 있는 완전한 유적을 발굴한 것은 산성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 것이라 하겠다.
공산성 내 남쪽에 있는 영은사의 앞 대지<臺地>에 있다. 동서로 석축한 성곽 밖 금강변 쪽에 있으며 동서가 긴 평면 장방형이다. 규모는 최대 길이가 21㎝, 너비는 약 12㎝ 이다. 호안석축은 단을 두어 쌓았는데 전체적이 모습은 위를 넓게 하고 아래를 좁혀 쌓았다. 이는 9층 석탑을 거꾸로 세워 놓은 듯한 형태와 흡사하다. 서측호안이 남쪽에 접해서 10 여개의 계단을 설치하여 출입 통로를 두었는데 계단은 다듬은 돌 2개씩을 포개 쌓았다. 이 통로는 호안석 상계단에서 아래로 4m 되는 지점에서 북쪽으로 90˚로 한번 꺾이어 제단이 설치되어 연지의 바닥까지 출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바닥은 판석으로 깔았고 동서 9m, 납북 4m의 규모이다. 연지의 인수구<引水口>는 특별히 시설된 것은 없는 것 같다. 연지 둘레의 동서벽에서 북쪽 금강변 호안으로 너비 40㎝의 배수로가 설치되었고 현재도 석루두<石漏頭>가 남아 있다. 이 연지의 북쪽과 금강 호안 사이의 대지에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복원할 수 있는 정면 4개, 측면 3개의 8각 고주가 발굴되었는데, 측면 중앙에 누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승가대석<昇架臺石>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누각 건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82∼1983까지 공주사범대학에서 발굴하여 유적지가 확인되었으며 이 연지는 백제시대부터 계속하여 이용되어 왔음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암문<暗문>을 통해 연지에 닿을 수 있는 완전한 유적을 발굴한 것은 산성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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