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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운강고택 - 9동 80칸의 큰 집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조선 후기의 주택으로 입향조 소요당 박하담이 벼슬을 사양하고 금천면 신지리에 은거하면서 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였다.
조선 순조 9년(1809)에 22세손 박정주가 살림집으로 건축하였으며 그 후 소요당의 12세손 운강 박시물이 크게 중건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갖추게 되었다 한다. 그 뒤 운강의 증손인 순병이 다시 중수하였다.
운강은 퇴계 이황 학파에 속하던 유치명의 문인이었다.

이 집 대문에는 김충현이 쓴 「雲岡故宅」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주택 전체의 건물배열은 사당을 맨 안쪽에 두고 그 앞에 두 개의 입구(口)자형 건물군을 결합시킨 쌍 입구자형태이다.
안채를 중심으로 한 입구자형 건물군과 사랑채를 중심으로 한 또 하나의 입구자형 건물군이 결합되어 9동 80칸의 큰 집을 이루고 있다.
주택으로는 보기 드물게 그 규모가 크며 대지도 1,700여평이나 되어 두 개의 넓은 안 마당과 사당앞의 백류원 터, 안채 후원, 사랑채 후원 등 넓은 공간을 여유있게 두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큰 사랑채가 야트막한 기단위에 놓여져 있다.
안채는 큰 사랑채와 직각으로 놓인 뒷사랑방과 곳간채와 나란히 배치되었는데 북쪽 깊은 곳에 부엌을 두고 안방과 대청이 놓였으며 안사랑방인 건넌방을 두었다.

특히 안채의 안방과 대청의 툇마루 앞에 기단보다 높게 설치된 디딤널(계단형식의 긴 나무판)은 여인네들이 신발을 벗고 오르기에 편리하도록 배려한 설치이다.
안채 북쪽의 안행랑채에는 방앗간과 고방이 함께 설치되어 있고 행랑채를 위한 조그마한 부엌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큰 사랑채와 앞 동쪽의 중사랑채는 책방이 한칸 있고 2칸의 온돌방과 1칸의 마루방으로 구성되어 있어 서당으로서의 규모를 잘 갖추고 있다.
다양한 수장고(收藏庫)와 내외분별에 치중한 설비와 공간, 주종을 명확히 구별한 측같, 서당의 존재 등은 이 집의 합리적인 구성과 다양한 기능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 이 집은 밀양 박씨 29세손이며 입향조 소요당의 17세손인 박성욱(朴性昱, 60세)씨가 대구에 기거하면서 관리를 하고 있어 옛모습을 제대로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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