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애사 -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우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북 정읍시 과교동 344-1

1689년 이 지방의 유림들이 이충무공의 유덕을 추모하여 건립하였다. 1871년(고종 5)에 철훼되었다. 한때 충렬사로 칭하여 오다가 다시 유애사로 복칭되었으며, 현재 건물은 1974년에 중건한 것으로서 현판은 이충무공의 종손인 이응렬씨의 글씨이다. 이 유애사에는 이충무공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대원군이 서원철폐를 내리자 미사액(未賜額)으로 폐지되었고, 그 후에 유허비(遺墟碑)를 세웠던 것이다. 고종 13년(1876년)에는 지방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일으켰던 유희진, 유춘필 두 사람의 이름을 좌우에 새겨 배향(配享)하고 이름을 유애사라 하였다.
이충무공은 선조 22년(1589년) 전라순찰사 이광의 군관이 되어, 조방장을 겸하다가 같은 해 12월 정읍현감으로 부임하였는데 당시 45세였다. 그는 선조 24년(1591년) 3월 전라좌수사로 떠나기까지 1년 4개월을 머물렀다. 집의 유공은 이름은 희진, 주박 유공의 이름은 춘필로서, 모두 정읍에 세거하던 동족이었다. 희진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우 희사, 이수 등 57명의 의사와 함께 의병을 일으키기 위하여 군량 35석을 장성남문창의소로 운반하였고, 다시 김제민과 더불어 출정(出征), 충청도 직산전투(稷山戰鬪)에서 전사하여 사헌부집의의 증직(贈職)을 받았고, 춘필 역시 김제민 등과 더불어 입암산성을 수호하며 정유재란까지 의병을 지휘하다가, 현북면 천마교에서 낙마하여 순사(殉死)하였다.

[승용차]
정읍에서 광주행 도로를 따라 4km남방으로 가다가 동편 사이길로 약 2km 들어간 농산마을에 위치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