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 38
한말의 풍운아 김옥균의 묘이다. 김옥균의 호는 고균, 시호는 충달공으로 조선조 철종 2년(1851) 1월 23일 충남 공주군 정안면 광정리에서 출생하였다. 고종 9년(187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은 호조참판에 이르렀으며 1884년 조국 개화를 위해 갑신개혁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1894년 한.청.일 3국의 제휴를 위한 삼화주의를 제창, 동양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청국의 실력자 리홍장과 의논하고자 텐진을 방문하던중 동년 3월 28일 상해 여관에서 수구파의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 당하였으며 시체는 본국으로 돌아와 양화진에서 능지처참되었다. 갑오경장으로 개화당내각이 조직된 후 총리 김홍집<金弘集> 등의 상소로 반역죄가 용서되고, 1910년 규장각 대제학 추증<追贈>, 익호<謚號>는 충달<忠達>이다. 묘<墓>는 일본 동경 청산외인묘지<靑山外人墓地>에서 1914년 9월 11일 의발<衣髮>을 이장, 정경부인 유씨와 합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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