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 산2-1
숭선군< 崇善君 >은 조선< 朝鮮 > 제16대 인조< 仁祖 >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인조 2년(1624) 이괄< 李适 >의 난으로 부왕< 父王 >을 따라 공주< 公州 >로 잠시 피해 와 있었던 인연으로 세상을 떠난 후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고 한다. 묘비< 墓碑 >에 보면 이 무덤은 숭선군과 부인의 합장묘< 合葬墓 >이며 무덤이 만들어진 해는 영조< 英祖 > 42년(1766)임을 알 수 있다. 숭선군은 숙종< 肅宗 > 16년(1690)에 세상을 떠날 때 공주에 묻어줄 것을 유언하였으나 당시 왕족의 무덤은 도성< 都城 >의 90리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법 때문에 중단되고, 그후 후손에 의해 다시 이곳으로 옮겨 만들어진 것이다. 무덤의 주의를 ㄷ자형으로 담장을 쌓고 무덤 앞으로 상석< 床石 >, 장명등< 長明燈 >, 문·무인석< 文·武人石 >, 망주석< 望柱石 >을 갖추고 있으며 무덤의 둘레는 18.6m, 높이는 2m이다.
숭선군< 崇善君 >은 조선< 朝鮮 > 제16대 인조< 仁祖 >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인조 2년(1624) 이괄< 李适 >의 난으로 부왕< 父王 >을 따라 공주< 公州 >로 잠시 피해 와 있었던 인연으로 세상을 떠난 후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고 한다. 묘비< 墓碑 >에 보면 이 무덤은 숭선군과 부인의 합장묘< 合葬墓 >이며 무덤이 만들어진 해는 영조< 英祖 > 42년(1766)임을 알 수 있다. 숭선군은 숙종< 肅宗 > 16년(1690)에 세상을 떠날 때 공주에 묻어줄 것을 유언하였으나 당시 왕족의 무덤은 도성< 都城 >의 90리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법 때문에 중단되고, 그후 후손에 의해 다시 이곳으로 옮겨 만들어진 것이다. 무덤의 주의를 ㄷ자형으로 담장을 쌓고 무덤 앞으로 상석< 床石 >, 장명등< 長明燈 >, 문·무인석< 文·武人石 >, 망주석< 望柱石 >을 갖추고 있으며 무덤의 둘레는 18.6m, 높이는 2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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