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군 예천읍 왕신리 371
이 자료는 1401년(태종) 2월 태종<太宗>의 즉위에 유공한 인물 46명을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책봉한 후, 개인에게 내린 공신교서<功臣敎書> 및 공신 책봉<冊封>이후 조선초 이래의 역대 공신인 개국<開國>, 정사<定社>, 좌명<佐命> 공신<功臣>들이 회맹<會盟>한 회맹록<會盟錄>이다. 김영열<金英烈>(1370, 공민왕 19∼1421, 세종 3년)이 좌명공신 3 등에 책봉될 때에는 공신교서와 공신도감<功臣都監>에서 발급한 록권<錄券>이 함께 발부되었으나, 현재 녹권은 남아 있지 않고 공신교서만 남아 있는 형편이다. 공신교서<功臣敎書>는 가정대부지삼군부사<嘉靖大夫知三軍府事> 의성군<義城君> 김영렬<金英烈>, 춘추관학사<春秋館學士> 이래<李來>, 우장군<右將軍> 윤목<尹穆> 등에게 내린 교서로, 이의 내용은 이들 3인이 박포<朴苞>의 반란시에 유공<有功>한 사적을 간단히 기록한 후 양전<良田> 80결<結>, 노비<奴婢> 8구<口> 등을 하사한다고 되어 있다. 회맹록<會盟錄>은 1401년(태종 1년) 2월 당시에 생존하고 있었던 개국<開國>, 정사<定社>, 좌명 공신<佐命 功臣> 66명이 회맹<會盟>한 후 하늘에 맹세를 한 후 작성한 회맹록<會盟錄>이다.
이 자료는 1401년(태종) 2월 태종<太宗>의 즉위에 유공한 인물 46명을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책봉한 후, 개인에게 내린 공신교서<功臣敎書> 및 공신 책봉<冊封>이후 조선초 이래의 역대 공신인 개국<開國>, 정사<定社>, 좌명<佐命> 공신<功臣>들이 회맹<會盟>한 회맹록<會盟錄>이다. 김영열<金英烈>(1370, 공민왕 19∼1421, 세종 3년)이 좌명공신 3 등에 책봉될 때에는 공신교서와 공신도감<功臣都監>에서 발급한 록권<錄券>이 함께 발부되었으나, 현재 녹권은 남아 있지 않고 공신교서만 남아 있는 형편이다. 공신교서<功臣敎書>는 가정대부지삼군부사<嘉靖大夫知三軍府事> 의성군<義城君> 김영렬<金英烈>, 춘추관학사<春秋館學士> 이래<李來>, 우장군<右將軍> 윤목<尹穆> 등에게 내린 교서로, 이의 내용은 이들 3인이 박포<朴苞>의 반란시에 유공<有功>한 사적을 간단히 기록한 후 양전<良田> 80결<結>, 노비<奴婢> 8구<口> 등을 하사한다고 되어 있다. 회맹록<會盟錄>은 1401년(태종 1년) 2월 당시에 생존하고 있었던 개국<開國>, 정사<定社>, 좌명 공신<佐命 功臣> 66명이 회맹<會盟>한 후 하늘에 맹세를 한 후 작성한 회맹록<會盟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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