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군 용문면 구계리 산 11-3
이정사는 전주이씨 희령군< 熙寧君 > 타< 타 >를 제향하기 위해 정조 16년에 세운 불천위< 不遷位 > 사당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 겹처마 맞배지붕의 이 사당은 평면구성과 부재의 조각수법이 특이하다. 일반 사대부 가정의 사당은 대개 정면 3칸, 측면 1.5칸인데 비해 이정사< 夷靖祠 >는 종묘< 宗廟 >의 건축양식과 유사한 구조와 양식을 띄고 있어 일반 사가< 私家 >의 사당과는 격식을 달리하고 있다. 이 사당은 처음에는 서울 동대문밖에 있었는데 병자호란< 丙子胡亂 >때 소실되어 종사< 宗嗣 >가 끊어졌는데 150년이 지난 1792년에 어명으로 봉사손을 세웠으며 같은 해 신주봉안을 위한 사판< 祀板 >재료를 하사받고 사당을 세웠는데 희령군의 시호< 諡號 >를 따서 이정사라 했다. 또한 여기에는 태종(1400∼1418)이 내린 어사금이 보관되어 있다.
이정사는 전주이씨 희령군< 熙寧君 > 타< 타 >를 제향하기 위해 정조 16년에 세운 불천위< 不遷位 > 사당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 겹처마 맞배지붕의 이 사당은 평면구성과 부재의 조각수법이 특이하다. 일반 사대부 가정의 사당은 대개 정면 3칸, 측면 1.5칸인데 비해 이정사< 夷靖祠 >는 종묘< 宗廟 >의 건축양식과 유사한 구조와 양식을 띄고 있어 일반 사가< 私家 >의 사당과는 격식을 달리하고 있다. 이 사당은 처음에는 서울 동대문밖에 있었는데 병자호란< 丙子胡亂 >때 소실되어 종사< 宗嗣 >가 끊어졌는데 150년이 지난 1792년에 어명으로 봉사손을 세웠으며 같은 해 신주봉안을 위한 사판< 祀板 >재료를 하사받고 사당을 세웠는데 희령군의 시호< 諡號 >를 따서 이정사라 했다. 또한 여기에는 태종(1400∼1418)이 내린 어사금이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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