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시 옥룡동
선생의 휘<諱>는 유태<惟泰>이고 자는 태지<泰之>이며 호는 초려<草廬>, 호는 문헌<文憲>이다. 선조 40년 정미(1607)에 태어나 18세에 김장생에게 사사하여 사계<沙溪>가 대유<大儒>라 칭하니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과 더불어 고제 삼헌<高第 三賢> 중의 1인이다. 유품으로는 현재 강경통<講經筒>, 인장<印章>, 옥관자<玉貫子>, 표주박, 백자<白瓷>, 호패<號牌>, 첨통<籤筒>등이 남아 있다. 호패는 초려선생이 사용한 상아제 1개와 그 후손들이 소지한 8개(목제품)을 합하여 총 9개이다. 인장은 5개로 하나는 옥제이며 해태상이 새겨진 방형<方形>이고 나머지는 목제품이다. 옥관자는 2쌍으로 유리제품이고, 표주박은 2개이며 소형이다. 백자는 하나는 매병<梅甁>이고 하나는 호<壺>이다. 매병은 높이 23㎝, 바닥지름 7.5㎝, 입지름 9.3m의 중품으로 바닥에 굽이 있다. 호는 유약의 색이 매우 맑으며 상품으로 생각되는데 높이 16㎝, 바닥지름 9.5㎝, 입지름 10㎝이다. 이들 백자는 초려선생의 묘 이장시 출토되었다 한다. 문집패일괄<文筆貝一括>은 첨통<籤筒> 1개와 강경통<講經筒> 1개이다.
선생의 휘<諱>는 유태<惟泰>이고 자는 태지<泰之>이며 호는 초려<草廬>, 호는 문헌<文憲>이다. 선조 40년 정미(1607)에 태어나 18세에 김장생에게 사사하여 사계<沙溪>가 대유<大儒>라 칭하니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과 더불어 고제 삼헌<高第 三賢> 중의 1인이다. 유품으로는 현재 강경통<講經筒>, 인장<印章>, 옥관자<玉貫子>, 표주박, 백자<白瓷>, 호패<號牌>, 첨통<籤筒>등이 남아 있다. 호패는 초려선생이 사용한 상아제 1개와 그 후손들이 소지한 8개(목제품)을 합하여 총 9개이다. 인장은 5개로 하나는 옥제이며 해태상이 새겨진 방형<方形>이고 나머지는 목제품이다. 옥관자는 2쌍으로 유리제품이고, 표주박은 2개이며 소형이다. 백자는 하나는 매병<梅甁>이고 하나는 호<壺>이다. 매병은 높이 23㎝, 바닥지름 7.5㎝, 입지름 9.3m의 중품으로 바닥에 굽이 있다. 호는 유약의 색이 매우 맑으며 상품으로 생각되는데 높이 16㎝, 바닥지름 9.5㎝, 입지름 10㎝이다. 이들 백자는 초려선생의 묘 이장시 출토되었다 한다. 문집패일괄<文筆貝一括>은 첨통<籤筒> 1개와 강경통<講經筒> 1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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