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대덕구 중리동 165-1
사육신<死六臣>의 한사람인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의 아우 박인년<朴引年>이 화를 입을 당시의 관직이었던 집현전<집현전> 교리<校理>를 복관<復官>한 교지<敎旨> 이다. 박인년은 단종복위<端宗復位>를 도모하다 순절한 박팽년의 아우로 이때 일가족 8인이 같이 참변을 당했다. 영조 15년 (1739)에 비로소 그 죄가 신원<伸寃>되어 관직이 모두 복구되었다. 이 교지는 사육신이 함께 신원복직<伸寃復職> 되었던 그 시기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박팽년의 일가는 그 시기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박팽년의 일가는 대전이 고향으로 동구 가양동에 살더 집터가 있어 그곳에 유허비<遺墟碑>를 세웠고 부지를 시기념물 1호로 지정 보존하고 있다. 단종때 화를 입은 박팽년의 가족은 다음과 같다. 박인년<朴引年>의 호<號>는 경춘헌<景春軒>이고 관<官>은 교리<校理>, 부<父> 박중년<朴仲年>의 호는 한석당<閑碩堂>이고 관은 판서<判書>, 형<兄> 박팽년<朴彭年>의 호는 취금헌<醉琴軒>이고 관은 참판<參判>, 제<弟> 박영년<朴永年>의 관은 정랑<正郞>, 박기년<朴耆年>의 호는 동재<東齋>이고 관은 수찬<修撰>, 박대년<朴大年>의 관은 박사<博士>, 질<姪> 박헌<朴憲> (박팽년 자<朴彭年 子>)
사육신<死六臣>의 한사람인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의 아우 박인년<朴引年>이 화를 입을 당시의 관직이었던 집현전<집현전> 교리<校理>를 복관<復官>한 교지<敎旨> 이다. 박인년은 단종복위<端宗復位>를 도모하다 순절한 박팽년의 아우로 이때 일가족 8인이 같이 참변을 당했다. 영조 15년 (1739)에 비로소 그 죄가 신원<伸寃>되어 관직이 모두 복구되었다. 이 교지는 사육신이 함께 신원복직<伸寃復職> 되었던 그 시기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박팽년의 일가는 그 시기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박팽년의 일가는 대전이 고향으로 동구 가양동에 살더 집터가 있어 그곳에 유허비<遺墟碑>를 세웠고 부지를 시기념물 1호로 지정 보존하고 있다. 단종때 화를 입은 박팽년의 가족은 다음과 같다. 박인년<朴引年>의 호<號>는 경춘헌<景春軒>이고 관<官>은 교리<校理>, 부<父> 박중년<朴仲年>의 호는 한석당<閑碩堂>이고 관은 판서<判書>, 형<兄> 박팽년<朴彭年>의 호는 취금헌<醉琴軒>이고 관은 참판<參判>, 제<弟> 박영년<朴永年>의 관은 정랑<正郞>, 박기년<朴耆年>의 호는 동재<東齋>이고 관은 수찬<修撰>, 박대년<朴大年>의 관은 박사<博士>, 질<姪> 박헌<朴憲> (박팽년 자<朴彭年 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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