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대덕구 미호동 188
신탄진에서 대청댐으로 가는 도로의 오른쪽 구릉 정상부에 남향하여 건립되어 있는 취백정은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逡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조선 숙종때 예조판서를 지낸 제월당<霽月堂> 송규렴<宋奎濂>이 만년에 제자를 모아 강학하던 당우<堂宇>이다. 이 건물은 원래 미호서원<渼湖書院>의 부속건물로 숙종27년(1701)에 건립하여 당시에는 정조대왕이 어필<御筆>로 내린 사호각<四湖閣>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으나 없어지고 지금은 제월당 송규렴이 쓴 상량문이 남아 있다. 송규렴(1630∼1709)의 자는 도원<道源>, 호는 제월당이며,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사마시와 문과에 급제하여 요직을 두루 거쳐 충청도 관찰사와 예조 참판을 지내고, 예조판서, 대사헌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 80세때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에 올랐다. 학문이 뛰어나 송시열<宋詩烈>, 송준길<宋俊吉>과 함께 삼송<三宋>으로 일컬어졌다. 돌아가신후 문희<文僖>의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신탄진에서 대청댐으로 가는 도로의 오른쪽 구릉 정상부에 남향하여 건립되어 있는 취백정은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逡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조선 숙종때 예조판서를 지낸 제월당<霽月堂> 송규렴<宋奎濂>이 만년에 제자를 모아 강학하던 당우<堂宇>이다. 이 건물은 원래 미호서원<渼湖書院>의 부속건물로 숙종27년(1701)에 건립하여 당시에는 정조대왕이 어필<御筆>로 내린 사호각<四湖閣>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으나 없어지고 지금은 제월당 송규렴이 쓴 상량문이 남아 있다. 송규렴(1630∼1709)의 자는 도원<道源>, 호는 제월당이며,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사마시와 문과에 급제하여 요직을 두루 거쳐 충청도 관찰사와 예조 참판을 지내고, 예조판서, 대사헌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 80세때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에 올랐다. 학문이 뛰어나 송시열<宋詩烈>, 송준길<宋俊吉>과 함께 삼송<三宋>으로 일컬어졌다. 돌아가신후 문희<文僖>의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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