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정<伴鷗亭>은 고려말 괴산군수<槐山郡守>, 좌사간<左司諫>, 김해부사<金海府使>를 지낸 사복재 권정<思復齋 權定>(1353∼1411)이 고려 멸망소식을 듣고 1392년 고향인 안동 임하면 도목촌 북쪽 지어실(현 예안면 기사리)에 건립하고 고려를 회복한다는 뜻으로 반구정<返舊亭>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한다. 그후 1720년 후손들이 현위치로 이건<移建>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로 4칸 마루와 2칸 온돌방으로 평면이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정자건물인 경우 앞쪽으로 마루가 개방되는 것이 상례이나 여기서는 폐쇄되었다. 그러나 필요시 개방할 수 있도록 들문을 채택하였고 온돌방과도 들문을 두어 전체가 하나의 공간을 연출할 수 있도록 처리한 수법이 돋보이며, 전체적으로 18세기 건축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영주동반구정 - 전체가 하나의 공간을 연출할 수 있도록 처리한 수법이 돋보여..
반구정<伴鷗亭>은 고려말 괴산군수<槐山郡守>, 좌사간<左司諫>, 김해부사<金海府使>를 지낸 사복재 권정<思復齋 權定>(1353∼1411)이 고려 멸망소식을 듣고 1392년 고향인 안동 임하면 도목촌 북쪽 지어실(현 예안면 기사리)에 건립하고 고려를 회복한다는 뜻으로 반구정<返舊亭>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한다. 그후 1720년 후손들이 현위치로 이건<移建>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로 4칸 마루와 2칸 온돌방으로 평면이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정자건물인 경우 앞쪽으로 마루가 개방되는 것이 상례이나 여기서는 폐쇄되었다. 그러나 필요시 개방할 수 있도록 들문을 채택하였고 온돌방과도 들문을 두어 전체가 하나의 공간을 연출할 수 있도록 처리한 수법이 돋보이며, 전체적으로 18세기 건축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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