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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해사소장금고 - 문양의 각조 표현이 시대성의 한면을 대표하고 장기(匠技) 또한 우수한 작품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영천시 청통면 치일2리 479

금고< 金鼓 >는 징과 같은 모양으로 한 면은 두드리는 면이고 반대면은 크게 구멍이 뚫려서 안이 공동< 空洞 >으로 되어있는 형태이다. 금고의 대개는 두드리는 면에 당좌< 撞座 >가 있고, 그 둘레에 연화문, 당초문 등의 돌출문으로 장식해 두었고, 그리고 측면에 명문< 銘文 >을 새겨 두는 경우가 있다. 은해사< 銀海寺 > 소장 청동제 금고는 1646년에 제작된 것으로 외견상< 外見上 >으로 동< 銅 >의 함량이 많아지는 조선후기< 朝鮮後期 >의 전형적< 典型的 > 재질< 材質 >(유기< 鍮器 >)로 되어 있고, 크기는 직경 77.2㎝, 두께 12.7㎝로서 큰 규격의 제품이다. 표면< 表面 >은 태선돌대< 太線突帶 >로 동심원< 同心圓 >을 그려 당좌구< 撞座區 >, 내구< 內區 >, 외구< 外區 >로 3분< 分 >하였다. 당좌구< 撞座區 >는 가운데에 삼중연화문< 三重蓮花文 >을 돌조< 突彫 >하여 당좌< 撞座 >로 하고 내구< 內區 >는 봉황문< 鳳凰紋 > 3개와 비운문< 飛雲文 > 3개의 돌조< 突彫 >를 등간격으로 교대로 배치하였고, 외구< 外區 >에는 단판연화문< 單瓣蓮花文 > 5개와 중판연화문< 重瓣蓮花文 > 5개의 돌조< 突彫 >를 역시 등간격상에 배치하여 장식했다. 측면에는 금고를 매달 수 있도록 윗쪽과 옆구리에 3개의 귀를 달아 두었고 귀가 달린 선상에 3조< 條 >의 돌대< 突帶 >를 돌려 측면< 側面 >을 전< 前 > ·후< 後 >로 2분< 分 >하였다. 그리고 앞면쪽의 분구< 分區 >에 6개의 작은 단판연화문< 單瓣蓮花文 >이, 뒷면쪽의 분구< 分區 >에 5개의 작은 단판연화문< 單瓣蓮花文 >이 등간격으로 배치해 두었다. 그리고 뒷면의 판대면< 板帶面 >에 제작연유를 기록한 점자명문< 点字銘文 >이 새겨져 있다. 명문은 다음과 같다. 新寧縣 八公山修道寺金鼓畵員□□施主□□比丘 順治三年丙戊四月初一日一百九十斤鑄成 大施主朴巳善□施主安自□施主金海男 冶匠金岩□別座虛幹 保體鮮善道人學烋 保體勤化 興益 比丘 惠廷 比丘 澄揮 比丘 惠輝 比丘大眞 금고는 신라시대부터 사찰에서 사용되어 온 악기로서 기능은 변하지 않았으나, 형태 장식문양의 표현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가져 왔다. 현재 고려시대 작품은 몇 점< 点 > 국가에서 지정되어 있으나 신라< 新羅 >, 조선시대< 朝鮮時代 > 작품< 作品 >의 지정은 없다. 은해사 금고는 고려시대의 금고에 비해 앞면의 문양이 후육< 厚肉 >하고 도안화< 圖案化 >된 고려시대의 문양에 비해 회화적인 표현으로 되었다. 이러한 문양의 표현과 그 배치는 금고의 변화 연구를 고찰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리라 사료된다. 특히 제작연대(1646년)가 분명하고 문양의 각조 표현이 시대성의 한면을 대표하고 장기< 匠技 > 또한 우수한 작품이다. 따라서 문화재< 文化財 >로 지정하여 보존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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