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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와이형상유품 - 고귀( 高貴 )한 인품( 人品 )으로 보아서도 가치있는 병와이형상유품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영천시 쌍계동 97-1

중요민속자료< 重要民俗資料 > 제119호로 지정되어 현재 경북< 慶北 > 영천군< 永川郡 >청도면< 淸道面 > 쌍계동< 雙溪洞 >에 거주하고 있는 후손< 後孫 > 이승창< 李秀昌 > 종중< 宗中 > 소장품< 所藏品 >으로 되어 있다. 이형상< 李衡祥 >은 자< 字 >는 중옥< 仲玉 > 호< 號 >는 병와< 甁窩 >·순옹< 順翁 >, 본관< 本貫 >은 전주< 全州 >, 효령대군< 孝寧大君 >의 십대손< 十代孫 >으로 효종< 孝宗 >4년(1653)에 태어났다. 숙종< 肅宗 >3년(1677) 사마시< 司馬試 >를 거쳐 동왕< 同王 > 6년 별시문과< 別試文科 > 병과< 丙科 >에 급제< 及第 >, 호조좌랑< 戶曹佐郞 >을 지내다가 덕유산< 德裕山 >에 도적이 창궐하자 문무< 文武 >를 겸비한 인물로 추천되어 금산군수< 錦山郡守 >로 부임, 도적을 토평< 討平 >하고 선정< 善政 >을 베풀었다. 숙종< 肅宗 >29년(1703)에 제주목사< 濟州牧使 >가 되어 3읍< 邑 >의 성묘< 聖廟 >를 수리, 덕망높은 선비를 뽑아 교학< 敎學 >을 담당케 했으며, 고< 高 >·부< 夫 >·량< 良 >의 삼성사< 三姓祠 >를 건립하는 한편, 미풍양속< 美風良俗 >을 장려하여 송덕비< 頌德碑 >가 세워졌다. 영조< 英祖 >3년(1727) 호조참의< 戶曹參議 >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영천< 永川 >에 홍연정< 洪然亭 >을 세워 학문< 學問 >에 열중하였다. 이듬해 가선대부< 嘉善大夫 >가 되고 후에 한성< 漢城 > 부윤< 府尹 >에 이르렀다. 영조< 英祖 > 9년(1733) 81세< 歲 >로 졸< 卒 >, 청백리< 淸白吏 >로 녹선< 錄選 >되었다. 유품< 遺品 >에는 인장< 印章 > 23과< 顆 >, 호패< 號牌 > 9점< 點 >, 거문고 1점, 홀< 笏 > 1점, 옥피리 1점, 칼 2점, 표주박 2점, 벼루 1점, 추구통< 抽句筒 > 1점, 화살 9점, 입영< 笠纓 > 6점, 관자< 貫子 > 4점 등이 있다. 여기 유품< 遺品 >들은 그의 고귀< 高貴 >한 인품< 人品 >으로 보아서도 가치있는 것이라 하겠거니와, 이러한 것들이 하나 둘 사라져가는 현시점< 現時點 >에서 길이 중요민속자료< 重要民俗資料 >로서 보존< 保存 >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사료< 思料 >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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