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살고 있는 이유길의 후손인 이호용<李浩龍>씨가 보관하고 있다. 연안이씨 중시조<中始祖>인 중랑장<中郞將> 이유길의 후손에는 8명의 상신<相臣>과 7명의 대제학<大提學>, 6명의 청백리<淸白吏> 그리고 조선조의 문과급제자가 250명이나 되며, 10여파로 나누어진 가운데 통례문<通禮門> 부사공<副使公>의 일세조<一世祖 : 中始祖>로 삼고 있는 이유길은 조선조의 청백리로 녹선<錄選>된 이후백<李後白>의 손자이다. 이유길은 아버지 이선경<李善慶>이 왜적과 싸우다가 전사 하자 복수할 생각으로 18세때 이충무공 휘하에 들어가 충무공을 따라 명량해전에서 공을 세워 9품직을 제수<際授>받았으며, 또한 명나라에서는 금의 침입으로 원병을 청하자, 이때 이유길은 우영장<右營將>으로 출전하여 최후까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순조대에 이르러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 겸영경연춘추관관상감사 세자사<大匡輔國崇錄大夫 議政府領議政 兼領經筵春秋館觀象監事 世子師>'가 증직<贈職>되었으며, 충의 <忠毅>라는 시호<諡號>까지 주었고, 부조묘<不조廟>의 은전<恩典>도 내렸다. 또한 용정사<龍井祠>에 이충무공과 같이 배향되고 있다. 위와 같은 이유길가<李有吉家>에 주어진 포전내용<褒典內容>의 교지<敎旨>와 부조묘를 받들고 있는 자손들에게 특별 대우하는 은전<恩典> 등에 관한 고문서가 잘 보존 전승되고 있는데, 이유길과 배위<配位>에 관한 교지 11매, 이유길 아들 이우인<李友仁>과 배위에 관한 교지 2매, 이유길의 손자 이석고<李碩考>와 배위에 관한 교지 3매, 이유길의 증손 이징국<李徵國>과 배위에 관한 교지 3매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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