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군 생초면 대포리
노은 민안부 선생은 고려말 두문동 72현의 한사람으로 고려조에서 예의판서를 지냈다. 이성계에 의 해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두문동(경기도 개풍군 광덕산 기슭)에 들어갔다가 산음(우리고장의 옛지명)으로 내려와 은둔하여 정착하였다. 대포서원은 조선숙종 19년(서기1693년) 선생의 절의를 기리는 전국의 유림들에 의해 건립되었으나 대원군의 서원 폐쇄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고종11년(서기 1874년)에 유림 후손등에 의해 숭절사, 숭의제, 동서재등이 중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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