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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당 - 경북 민가건물의 전형...이상도 선생의 살림집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1∼2리 106

유우당(惟于堂)은 원래 석보면 주남리(做南)에 있던 것을, 약 120년 전 후손인 이돈호(李暾浩)가 이곳 원리 두들마을로 이건한 것으로, 조선 순조3년(1833)에 이상도(李相度, 1733 ∼ 1835)가 창건을 시작하였으나 병으로 장자인 유우당 이기찬(惟于堂 李箕燦)에 의해 완성하게 된다. 1841년 해우 김진우(海禹 金鎭宇)가 집 이름을 이기찬의 호를 따서 '유우당(惟于堂)'이라 짓고 이원조의 글을 받아 새겼다.
후손으로는 3.1운동때 파리 장서사건(長書事件, 1919년)에 가담하여 서명한 137명중 한분인 운서 이돈호(雲西 李暾浩, 1869 ∼ 1942)와 그의 조카인 요절시인(夭折時人)몽구 이병각(夢驅 李秉珏, 1910 ∼ 1941)이 있다. 이상도는 13세(世) 이시명(李時明)의 둘째형(仲兄) 시형(李時亨)의 가계이다.

유우당은 원리 마을의 가장 깊은 곳에, 배산하여 남향으로 자리잡아 정침과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당은 정침의 우측 약간 높은 곳에 배치되어 있다. 정침은 막돌로 쌓은 높은 기단위에 ㅁ자형으로 지어진 집인데, 높은 기단으로 오르는 자연석 층계를 오르면 사랑채를 달아낸 중문이 있고 중문 안으로 높은 월대 위에 안채 대청마루가 마주보인다. 높은 대청을 오르기 위해 높은 댓돌을 설치해 두었는데, 자연석과 시멘트를 버물려 볼품은 잃었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을 두고 안방의 후면에는 반문 규모의 도장방을 둠으로 해서 반문정도가 대청앞으로 더 돌출되어 도장방을 광으로 쓰기에 유리하게 구성하였다. 이 안방은 주부(2세)의 안방이며 안방앞 남쪽으로 부엌을 두었는데 부엌에서 후원으로 나갈 수 있도록 판문을 설치하였다. 부엌 천장에는 다락을 설치하여 안방에서 출입 할 수 있게 하였다. 대청 오른쪽(동쪽)에 작은 건너방을 두고 건너방 앞에 4자(尺) 폭의 통로를 두었는데 작은 건넌방은 며느리(3세)의 방이다. 남쪽으로 사랑채에 딸린 작은 사랑방이 1칸 있다. 이 방은 이 집의 안노인(1세)방이다.

중문칸 오른쪽의 사랑채는 사랑방과 사랑대청으로 이루어졌고, 사랑채는 안채에 붙은 一자형 정면 누각형인데 사랑대청의 좌측 끝은 판벽으로 막아 안채로의 출입자들과는 의도적으로 단절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채로의 출입도 사랑마당을 가로질러 이집 오른쪽 끝의 댓돌을 이용하여 기단을 올라와 직각으로 틀어 판벽문으로 출입토록 되어 있다. 이것은 예학사상에 의해 사대부들의 출입동선을 미리 예견하여 취한 배려로 뒤의 1칸 사당과 함께 엄격한 도덕성이 돋보이는 집이다. 큰 사랑 곁에 사랑대청을 두어 여름에는 미닫이를 열어 활용토록 하였으며 사랑방과 사랑대청의 전면에는 반칸 규모의 툇간(退間)을 두고 여기에 다시 툇마루(退)를 내었다. 사랑방 뒤에는 사랑 안노인(1세)이 거하는 중방(작은방)을 두어 사랑방과 통과하게 하였는데 이 방을 통하여 좁은 여닫이 문으로 안채와 연락되도록 구성되어 있다. 중방 뒤로는 고방이 안채와 연결된다.

사랑마루에서 올려다 보는 종도리를 받친 대공이 원과 사다리꼴 사각형을 합쳐 만든 특이한 형식이다. 대들보 위 별목은 이 집을 옮겨오면서 따로 곁들인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 누각난간 중간기둥의 초석이, 마치 거북이가 엎드린 형국을 한 자연석으로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더구나 이 집의 사랑채는 옆의 출입을 위한 채와는 평면적으로는 붙어 이어진 공간이지만, 옆채가 맞배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는 반면에 사랑채는 팔작지붕 구조를 하고 있고 입면상으로는 두 단의 기단을 두어 월등히 높은 입면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이 마을 전면으로 펼쳐 보이는 전경을 이 사랑대청에서 즐기고자 하는 의도이다.

옛날 우리 사대부들이 그들이 살 터를 정할 때, 우선 세상에서 벗어난듯한 골짜기의 평온한 아름다움과 시원스러운 운치를 즐길 수 있는 경승지로서 심산유곡에 시냇물이 흐르는 곳을 그들의 현실적인 이상향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실제 관직에서 물러나 한거하거나 제자들을 모아 강론하면서, 주자(朱子)가 무이(武夷)에서의 생활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구곡(九曲)을 경영하며 심성을 탐구하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주거를 심산유곡의 풍광이 좋은 곳에 정하면서 현실적 피안(儒敎的 隱遁), 초현실적인 환상계(天界나 仙界), 종교적 피안(極樂淨土), 현세발복과 미래와 낙원사상(風水地理)에서 현실적인 이상향으로 이러한 곳을 찾아 거처를 정하면서 이 마을 옆의 경관을 집안에서 즐기고자 하는 의도라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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