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시 도통동 395
선원사는 통일신라 헌강왕(憲康王) 원년(875년) 신라말의 고승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은데, 선원사는 남원시의 번영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믿어 왔으므로, 시내에 거주한 지방인사들은 조선시대부터 노계소(老契所)인 신도계(信徒契)를 만들어 선원사를 후원하고 보호해 왔으며 역대 부사들도 각별히 보호해 왔다.
일설에 의하면 사찰 창건당시 경내는 지금의 중앙초등학교 일대에 미치는 큰 규모로, 왕정동 만복사에 버금가는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정유재란때 왜병에 의해 전소되었으며, 그후 영조 30년(1754년)에 새로 부임한 김세평(金世平) 부사가 신도계와 협의, 이듬해 선원사를 복구하였다.
정유재란의 병화를 입어 사찰이 전소되고 남은 것은 오직 철불(鐵佛) 뿐이었으며, 지금은 약사전(藥師殿)에 안치되어 있다. 이 약사전은 겹처마형식의 맞배지붕집으로서 익공계(翼工系)양식을 취하고 있다. 기단은 평지에서 그다지 높지 않게 자연석을 쌓아 긴 갑석(甲石)으로 마무리 하였으며, 초석은 자연석 덤벙(柱礎)을 사용하였다.
기둥은 배흘림이 있고 우주(隅柱)의 안쏠림은 뚜렷하며, 귀솟음 수법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용마루와 처마의 선은 비교적 직선에 가까워 무거운 느낌을 주지만 평지사찰로서의 동질성을 유지하려 하였다.
내부의 공포는 간단히 운공형(雲工形)의 보아지를 하여 대들보를 받치게 하였고, 당초문(唐草紋)으로 장식하였다. 천장의 구조는 우물천장으로 짰으며, 바닥은 보방향의 장귀틀과 도리(道里)방향의 동귀틀로 짠 우물마루를 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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