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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곡종택 - 조상 대대로 살아온 단 하나의 집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1∼2리 354

재령이씨 영해입향조 이애(李애)의 5대손 이도(李櫂, 1636 ∼ 1712)의 집으로 주남리에 있던 것을 손자인 이인달(李仁達, 1691 ∼ ?)이 1830(순조 30)에 이건한 것이라 한다. 주곡 이도(做谷 李櫂)는 우계 이시형(李時亨)의 셋째 아들로 영해읍 인량리에서 출생하였으나 당대의 집안 석학 이휘일, 이현일 등에게서 수학코자 주사동(做士洞, 현 주남리)으로 이주하였다(1675년). 시예(詩禮)와 문장이 뛰어나고 성품이 온후 방정하여 주곡거사(做谷居士)로 칭했다.

두들마을은 여러시대를 살아오면서 많은 변화가 있어 원래의 소유주와 현주인이 같은 집은 영감댁, 주곡종택, 도사댁, 유우당 4집 뿐이며 그외의 집들은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하여 주인이 바뀌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들 중 주곡종택은 주남리의 집을 뜯어서 이곳으로 옮겨 지은 집이면서도 현재까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단 하나의 집이다.

주곡종택은 마을 가장 뒤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집의 전면 좌측으로 이 마을 뒤 야산 줄기의 맥이 뻗어 내리고 있어 자연스러운 경계를 이루며, 우측으로는 평야가 펼쳐져 있어 자연히 집의 좌향도 인좌신향(寅坐申向)으로 동남향을 하고 있다.
중문을 통해 안채에 이르면, 2칸 대청을 가운데 두고 안방과 정지(부엌) 그리고 마루를 겸한 중문이 집의 왼쪽을 이루며 오른쪽으로는 새댁을 위한 상방과 수장공간과 선조들의 신위를 모셔놓은 감실방과 사랑대청을 두고 있다.

사랑방이 이 집의 정면 가운데에 위치하고 사랑방과 사랑대청은 전면으로 퇴를 두르고 가운데 마당을 둔 뜰 집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뜰 집의 가장 기본단위인 4칸 집에서 측면만 반칸이 늘어난 형태인데, 이러한 집 구성은 대개 태백산맥 유역에서 볼 수 있는 봉당이 있는 겹집이 확대된 평면구조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보이는 가운데 뜰은 아주 작은 공간으로 작업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사랑방 전면의 퇴는 대청의 기능 보다는 사랑방과 대청의 연결통로와 사랑 출입의 기능으로 쓰이고 있다. 즉 사랑채 출입은 이 집 왼쪽기단의 댓돌을 올라 전면의 퇴를 통하여 사랑방으로 출입토록 계획되어 있으며, 안채로의 출입은 전면의 마굿간과 붙은 중문을 통하게 되어있어 안팎의 출입 공간을 차별화 시키고 있다. 따라서 사랑채에서 안채로의 출입을 인지 할 수 있으며, 사랑대청은 문을 달아 막힌 구조를 하고 있는데 이는 이 지역의 기후조건과 관계가 깊다고 볼 수 있다.

이 집은 특히 수장공간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안방 위와 맞은 편의 살방과 감실 사이 그리고 정지 위와 마구도 이 공간들의 레벨이 낮은 관계로 위쪽의 남는 공간을 수장공간으로 쓰고 있는데, 이는 깊은 산골로 갈수록 곡식의 중요성이 평지 마을보다 중하므로 이러한 수장공간이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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