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양군 입암면 연당1∼2리 394-1
서석지는 조선 광해 5년(1613)에 성균관진사를 지낸 석문 정영방(石門 鄭榮邦, 1577 ∼ 1650)이 조성한 조선시대 민가(民家) 연못의 대표적인 정원유적이다.
연못은 수려한 자양산(紫陽山)의 남쪽 완만한 기슭에 위치하였는데, 이 정원은 내원(內苑)과 외원(外苑)으로 구분되어 있다. 내원은 큰 정자인 경정(敬亭) 뒤편에 있는데 경정 오른쪽의 협문을 나서면 디딜방아와 마굿간, 부엌 등이 연결된 부속채가 있고 독서와 생활을 겸할 수 있는 4칸짜리 기와집과 별도로 서쪽에 마련된 장판각들이 한 울에 함께 있다. 외원에는 병풍 바위로 되어 수려한 천혜의 선경을 이루고 있다. 내원과 외원의 공간비는 1 : 3으로 공간미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였고 화려한 꽃 보다는 청초한 식물을 가꾸었으며 외부와의 시계를 차단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정원의 마당에는 잔디를 심었다.
인공으로 만든 연못의 서쪽에는 6칸 대청과 2칸 온돌이 있는 규모가 큰 정자인 경정(敬亭)을 세우고 凹모양의 연못 북쪽에는 3칸 서재인 주일재(主一齊)를 두었는데 운서헌(雲棲軒)이라 편액하였다. 주일재의 앞, 연못으로 돌출되어 나온 석단을 사우단(四友壇)이라 불러 군자의 절개를 나타내는 송(松), 죽(竹), 매(梅), 국(菊)을 심어 운치를 더하였다. 가로 13.4m, 세로 11.2m, 깊이 1.3 ∼ 1.7m의 요(凹)자형 동서로 긴 이 연못의 석벽은 그 구축법이 매우 가지런하고 깔끔하다. 동북 귀퉁이에는 산쪽에서 물을 끌어 들이는 도랑(읍청거)을 내었고, 그 대각점이 되는 서남쪽 귀퉁이에는 물이 흘러나가는 도랑(토장거)을 마련하였다.
이 연못의 이름은 연못 안에 솟은 서석군(瑞石群)에서 유래한다. 서석군은 연못바닥을 형성하는 크고 작은 암반들이 각양 각색의 형태로 솟아있는 것으로, 돌 하나하나에 모두 명칭이 붙어있다. 선유석(仙遊石), 통진교(通眞橋), 희접암(戱蝶巖), 어상석(魚狀石), 옥성대(玉成臺), 조천촉(調天燭), 낙성석(落星石) 등 물 위에 드러난 돌이 60여개, 침수된 돌이 30여개 등이, 더러는 물속에 잠기기도 하며 더러는 드러나기도 하여 전통정원 조경미의 오묘한 정취를 나타내게 한다. 이러한 명칭들은 정영방의 학문과 인생관은 물론 은거생활의 이상적인 경지와 자연의 오묘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심취하는 심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연못에는 연꽃을 심어 연꽃이 필 때면 연꽃향이 그윽히 풍기고 있으며 정자마루 위에는 당시에 대명절의로 이름난 명사들의 시가 보존되고 있어 당시의 사회상과 선비들의 생활상 및 주변에 가꾸었던 식물에 대한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서석지는 정주(定住)공간 조성의 생태적 접근방식이나 자연지형의 의미 부여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합일사상' 등을 토대로 한 정원조성의 기법을 이용하고 음양오행설 및 풍수설과 무위자연설에 바탕을 두어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기본으로 하여 조성한 가장 순수한 임천(林泉) 정원으로서 일본이 자랑하는 임천정원에 훨씬 앞서 발달된 우리 고유의 정원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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