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1∼2리 308
조선조 선조 ∼ 현종 연간의 학자인 석계 이시명(石溪 李時明, 1590 ∼ 1674)의 고택.
석계는 영덕군 창수면(蒼水) 인량리(仁良)에서 태어나 일찍이 진사시(進士試)에 올랐으나, 입신양면의 길에서 뜻을 고쳐 일생을 학문 연구에 바치기로 다짐하고 경전의 오묘함을 연구하다가 병자호란을 기해 1640년(인조 18)에 영양군 석보로 들어가 석계 위에 집을 짓고 석계(石溪)라 자호(自號)하였다.
석계는 안동의 두실원(兜率院)에서 임종하였으나 정부인(貞夫人) 장씨(張氏)는 부군 사망(1674년) 후 1676년 4남 항재 이숭일(恒齋 李嵩逸)과 함께 이곳 석계에 와서 임종 때(1681년)까지 살았다 한다.
一자형 사랑채와 안채는 흙담으로 막아 허실감(虛失感)을 메우고 뜰집과 같은 느낌이 들도록 하였다.
사랑채는 대문을 중심으로 사랑방과 사랑마루를 두었으며 좌측에는 마구와 고방을 설치하였다. 사랑마루 주위에는 판벽(板壁)을 둘러 마루방으로 꾸몄으며 후면에는 감실(龕室)을 설치하였다.
정면 5칸, 측면 1칸, 3량가, 홑처마, 맞배지붕.
안채는 왼쪽으로부터 부엌, 안방, 대청, 상방이 연접해 있는데 안방 옆의 마루 후면에는 판벽을 둘러 고방을 설치하였다.
상방의 오른쪽 벽에는 상하 안방사이에 문꼴을 내어 문을 달았는데, 밖으로는 세살문을 안쪽으로는 판장문을 설치하였으며, 안방에는 꽃굴의 흔적이 남아있는 삼량으로 된 간결한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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